"갈 곳이 없어요" 학대 피해 이주 아동의 눈물
학대당해도 외국인은 아동보호시설 입소 거부
국적 상관없이 학대 피해 지원해야…"보편적 출생신고도 필요"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중국 동포인 아버지와 함께 6살 때인 지난 2010년 한국에 온 A군(15). 중도입국 청소년이다.
A군에게 학교생활 적응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이야기할 시간은 많지 않았고 친구 사귀기도 어려웠던 소년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체벌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2015년 A군의 학대 피해가 외부에 알려졌을 당시 그는 심한 체벌로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재학대 가능성도 높아 분리 보호 조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아버지와 달리 A군의 신분은 여전히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3년 넘게 A군의 사례를 관리 중인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당시 지역 내
여러 아동보호시설에 A군 보호를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모든 대답은 '한국인이 아니라 입소가 어렵다'였다"고 6일 전했다.
이 관계자는 "A군의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해 중국 국적을 포기하려고 했으나 친모의 동의가 필요했다"며 "중국에 있는 어머니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라고 안타까워했다.
A군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출 청소년 쉼터에 입소했지만 그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개월뿐이었다. 몇 차례 입소 연장을 했지만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학대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때리지는 않았지만 화가 나면 그에게 "중국에 보내버리겠다"고 폭언했다. 결국 A군은 지난해 말 스스로 집에서 나와 다시 가출 청소년 쉼터에 들어갔다.
◇ 학대 이주 아동 지원금 '0원' 아동권리협약 비준국 한국의 현실
주변의 도움으로 꾸준히 사례 관리가 가능한 A군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동 학대 가해자의 70∼80%가 부모인 상황에서 국내에 연고가 없는 대다수의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주 아동은 부모의 학대가 발견돼도 갈 곳이 없다.
아동보호시설이나 아동보육시설에 입소하는 방법이 최선이지만 '외국 국적' 이주 아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의료급여 수급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학대 피해를 받는 '외국 국적' 이주 아동 보호를 위한 모든 비용을 아동보호시설 자체 재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보호시설이 이들 외국 국적 이주 아동 입소를 거부하는 아동복지시설에 과태료를 부과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으나 복지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입소 강제가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 관계자는 "외국 국적자 관리는 기본적으로 법무부 소관이고 학대 피해 외국 국적 이주 아동에 대한 관리의 1차적 책임과 관련 예산도 법무부에서 확보하고 있다"며 "법무부가 아동 학대 외국인 가해자에 대한 교육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위탁하고 있는 것처럼 피해 아동 보호 업무도 이러한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학대당해도 추방당할까 '쉬쉬'…"아동 기본권 강화해야"
외국 국적 이주 아동 학대는 체류 자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피해 당사자와 주변에서 신고를 꺼리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사실 자체를 은폐하거나 더 큰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주 아동 학대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공식 통계조차 없는 것도 문제다.
지난 2016년 복지부가 국회 김상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학대 등을 이유로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한 이주 아동의 수는 2013년 2명, 2014년 2명, 2015년 5명이다.
이주 아동 학대 의심사례 신고건수는 2013년 24건에서 2015년 94건까지 늘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아동보호시설 입소 체계상 아동의 국적을 분류하는 별도의 항목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당 자료로 파악되지 않는 이주 아동 학대 의심 건수나 학대 피해 아동 입소 건수는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국적과 관계없이 학대 피해 이주 아동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
실제 캐나다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모든 권리를 국가 내 거주하는 모든 아동에 적용하고 있고, 영국도 국내 아동법을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에게 적용한다.
보편적 출생신고 도입을 통해 이주 아동의 교육·건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변호사는 "외국 국적으로 추정되는 아동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출생했다고 해도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아동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고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편적 출생신고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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