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쭉날쭉'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개편 본격화…로드맵 나오나
세 부담·인상률 불균등에 불만…공시업무 관할권 놓고 갈등 조짐도
"공시가격 현실화도 제도 틀안에서…가격공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정부가 올해 들어 토지와 단독주택, 아파트 등 부동산 공시가격을 고가 위주로 대폭 인상하면서 공시제도의 큰 변화를 시도함에 따라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는 부동산 유형별, 가격별로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 비율이 달라 형평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시 가격을 조정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해 갑자기 높아진 세금 부담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인상률이 들쭉날쭉 고르지 못하고 정부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가 부동산 가격 공시제도의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공시가격의 결정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책 방향을 정리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제도 개선안에 대한 논의와 맞물려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업계는 부동산 공시 업무의 관할을 놓고 다시 갈등의 골을 보이고 있다.
◇ "공시가격 현실화·형평성 제고"…"'깜깜이 공시' 그 근거는 뭐냐"
5일 국토교통부와 관련 학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공시하는 것은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보유세 부과 등 조세와 건강보험료 산정 등 60여개 행정의 기초 정보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서로 다른 기관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부동산 가치를 평가하게 되면 가격 불균형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어 정부가 하나의 틀로 가격을 매기기 위해 공시제도를 도입했다.
1989년 토지의 가격을 정하는 공시지가 제도가 도입됐고 2005년에는 주택에 대한 가격공시 제도가 시작됐다.
토지와 단독주택은 표준지와 표준단독주택을 뽑아 먼저 가격을 산정하고 나머지 개별지와 개별주택은 표준을 참고삼아 가격을 정하게 된다. 아파트는 표준을 따로 만들지 않고 일괄 산정한다.
그러나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비해 단독주택이나 토지는 거래가 활발하지 못해 시세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공시가격을 시세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게 됐다.
이에 작년 기준으로 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은 51.8%, 토지는 62.6%, 공동주택은 68.1% 등으로 유형별로 벌어졌다.
특히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고가 단독주택의 경우 시세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땅과 건물을 합산한 가격인 공시가격이 땅만 산정한 공시지가보다 낮게 책정돼 건물값이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부터 단독주택과 토지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이면서 그중에서도 단독주택은 시세 15억원, 토지는 2천만원/㎡, 공동주택은 12억원이 넘는 고가 부동산을 정조준해 공시가를 대폭 올렸다.
이에 갑자기 세금 부담이 커지게 된 고가 부동산 소유자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한 동네에서도 상승률이 고르지 못하게 나온 지역에서는 가격 산정의 근거가 뭐냐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감정원이 산정한 표준단독주택 공시가에 비해 지방자치단체가 표준단독을 근거로 정한 개별단독 공시가가 대체로 낮게 나오면서 국토부가 지자체를 상대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일선 지자체에서도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 한 구청 관계자는 "국토부가 내려준 지침대로 평가해서 가격을 산정했을 뿐인데 조사를 한다고 하니 황당하다"며 "정부가 갑자기 일부 부동산만 공시가를 너무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생긴 혼란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전문가들 "구체적 로드맵 제시하고 제도 틀 속에서 운용돼야"
부동산 가격 공시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결과론적 제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민들이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등 정책을 납득하려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야 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 장기 로드맵을 제시하거나 공시가격 결정 시스템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부동산 가격공시는 정부의 철학이나 정책적 결정에 의해 자의적, 재량적으로 운영돼서는 안 되며 제도화를 통해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공시가격을 단계별로 현실화하고 균등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정부는 로드맵을 수립하고서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한 다음 공시가격을 정책적으로보다 제도적 틀 안에서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은 부동산의 가격 수준을 평가한다는 본연의 취지에 충실해 시가를 적극 반영하되, 조세나 복지정책 등에 반영할 때에는 각 부처가 이를 적절히 조절해서 이용하면 된다고 김 교수는 제시했다.
국토부 관행혁신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는 이강훈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공시가격은 시장에서 성립될 가능성이 높은 가격이 돼야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맞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는 "공시가격은 공시가격대로 운영하고 조세나 복지 등에 활용할 때는 각자가 어느 정도를 반영할지 결정해서 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깜깜이 공시' 논란에 대해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할때 정리된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발표 때마다 조금씩 내용을 공개하는 식"이라며 "정부가 왜 이런 정책을 펼치는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올해처럼 고가 부동산을 골라 집중적으로 공시가격을 올린 방식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공시가격은 감정평가사 등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객관적으로 산정돼야 한다"며 "올해와 같이 표준단독의 경우 공시가 9억원(시가 15억원) 이상 주택을 매우 높은 상승률로 올리는 식으로 가격을 산정한 것은 개별주택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8억5천만원짜리 집은 10%도 오르지 않는데 9억5천만원짜리 집은 50% 오르는 식이라면, 인근 표준주택에 따라 가격 수준이 결정되는 개별단독은 어느 표준주택 근처에 있느냐에 따라 상승률이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미국의 경우 감정평가사 등 전문가 집단이 주축이 돼 부동산 가격공시를 하고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어떤 근거로 가격이 산정됐는지 상세히 설명하는 자료를 제공한다"며 "납세자 권리 보장 측면에서도 공시가격이 어떻게 산정됐는지 국민들에게 최대한 설명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감정원-평가사 해묵은 기싸움도 재연 조짐
가격공시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관련 업무를 하는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사들의 '기싸움'도 재개될 조짐이다.
감정원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가격 공시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공시 일원화'의 필요성을 홍보했다.
채미옥 감정원 KAB부동산연구원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가격의 균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의 공적기관에서 과세평가를 전담하고 있다"며 "공시가격 조사의 주체를 통일하고 중앙정부 주도의 단일기준 가격조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지자체가 개별단독주택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채 원장은 "주민 투표로 선발되는 민선 지자체장 체제에서는 지자체 주도의 부동산 가격 조사는 지역별 가격불균형 문제를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통합·홍보이사는 최근 유튜브를 통해 '5분 강의'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최근 올린 '현행 공시제도의 문제점' 유튜브 영상에서 "토지는 감정평가사가, 주택과 공동주택은 감정원이 담당하는 공시가격 생산 주체의 이원화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토지와 주택은 공시가격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만 감정원의 공동주택 가격 산정에는 검증 절차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표준지는 50만건에 대해 감정평가사 1천78명이 동원되는데 표준주택과 공동주택은 감정원 직원 500명이 맡고 있다"며 "감정원은 이 외에 지가변동률, 상가권리금, 기준시가 등 다른 많은 업무도 하고 있기에 가격공시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하기도 했다.
앞서 정부가 2012년 감정원에 부동산 가격 공시업무를 총괄하게 하면서 감정평가협회의 표준지공시지가와 표준주택 가격 산정 등 공적기능을 감정원에 대폭 이양하면서 평가사들과 감정원간 갈등을 겪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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