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서 또 개표 '음모론'…'박빙' 이스탄불 결과 10시간 '먹통'
정보 제공 관영 매체, 野후보 0.05%p 차 추격한 후 업데이트 중단
선거 당국 "관영 매체 데이터, 우리가 제공한 정보 아니다"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터키 지방선거에서 '격전지' 개표 정보 갱신이 장시간 중단돼 '음모론'이 재현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터키 지방선거 후 언론의 실시간 개표 보도에서 이스탄불 광역시장 개표 결과가 밤 11시 30분께부터 약 10시간 동안 갱신되지 않는 사고가 벌어졌다.
초반 개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 후보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가 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에크렘 이마모을루 후보에 약 2%포인트 앞서며 전문가 다수의 예상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개표가 중반으로 접어들며 득표율 차이가 1%p로 줄어들었고 격차는 계속 좁혀졌다.
자정을 약 30분 남기고 개표가 98.8% 진행된 당시 이을드름 후보와 이마모을루 후보의 격차는 0.05%p까지 근접했다.
집권당 이을드름 후보는 이 무렵 승리를 선언했다.
이어 이마모을루 후보 측은 자체 집계 결과는 이미 역전에 성공했다며, 역시 승리를 주장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 개표 정보 갱신은 이뤄지지 않아 유권자뿐만 아니라 언론의 의구심이 증폭했다.
한국과 달리 터키 언론은 개표 결과를 선거관리 당국으로부터 직접 수신하는 것이 아니라 관영 아나돌루통신이 제공하는 정보를 보도한다.
이에 따라 개표 보도의 '도매상' 역할을 한 아나돌루통신이 '불순한' 의도로 야당이 역전한 개표 상황을 숨기려 결과 업데이트를 중단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확산했다.
더욱이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해당하는 '최고선거위원회'(YSK)마저 완료된 후 결과를 공지하겠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개표 상황 웹사이트를 닫았다.
이마모을루 후보는 1일 아침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아나돌루통신이 실제 개표 결과를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디 귀벤 YSK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이마모을루 후보가 이을드름 후보를 2만8천표 차로 역전했다고 공개하면서 이런 의혹이 더 짙어졌다.
아나돌루통신은 귀벤 위원장의 기자회견 후에야 개표 정보를 갱신했다.
일간지 줌후리예트 등 에르도안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은 아나돌루통신이 선거관리 당국이 아니라 집권당 시스템으로부터 개표 정보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귀벤 위원장은 2일 "아나돌루통신은 우리 정보를 받아가는 고객이 아니다. 아나돌루통신의 개표 정보 출처를 모른다"고 말해,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한술 더 떠 오다TV 등 일부 인터넷 매체는 셰놀 카잔즈 아나돌루통신 사장이 '윗선'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후 개표 결과 업데이트를 중단하라고 직원회의에서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아나돌루통신은 "카잔즈 사장의 발언이 왜곡 전달됐다"는 반박 성명을 냈다.
터키에서 투·개표 부정 시비나 음모론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편이다.
2016년 대통령중심제 전환 국민투표에는 선거위원회 직인이 없는 표가 무더기로 나와 야당의 반발을 샀으나 결국 유효표 처리됐다.
2014년 지방선거에는 개표 중간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져 개표가 일시 중단됐다.
당시 정전 원인과 관련해 변전소에 들어간 고양이가 배선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는 조사 내용으로도 논란이 됐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언론 노출 쏠림 등 집권당에 편파적인 선거운동 여건은 최근 2∼3년 새 더욱 심각해졌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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