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원 더 뽑아 줘야 하니 먼저 인출한 5천만원 잠시 맡아줘"
보이스피싱에 속은 70대 돈다발 맡기려 경찰서 찾았다가 피해 모면
(횡성=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보이스피싱에 속아 수거책에게 전달하려고 5천만원을 인출한 70대 노인이 현금 추가 인출에 앞서 먼저 뽑은 거금을 잠시 맡기려고 경찰관서를 찾았다가 피해를 모면한 사연이 알려졌다.
3일 횡성경찰서에 따르면 횡성에 사는 A(73)씨는 지난달 25일 오전 횡성경찰서 횡성지구대를 방문, 근무 중인 경찰관에게 현금 5천만원을 보관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인의 목소리는 다급하면서도 불안감에 떨렸다.
이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지구대에서 근무 중이던 이종성(45) 경위는 다짜고짜 현금을 보관해 달라며 점퍼 주머니에서 현금다발을 꺼내놓는 A씨의 모습에서 보이스피싱을 직감했다.
사연은 이랬다. A씨는 사건 당일 오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말에 속아 농협 창구를 찾은 A씨는 현금 5천만원을 인출하려 했다. 경찰관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전화였지만 A씨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농협 창구 여직원도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20분간 인출을 만류했지만, A씨는 "아들에게 줄 전세자금"이라며 막무가내였다.
끝내 3천500만원과 1천500만원 짜리 적금 두 개를 깨고 5천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하고 농협을 나선 A씨는 자신의 통장에 800만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추가로 인출하려다 지구대로 발길을 돌렸다.
5천만원 현금다발이 너무 많아 자신의 점퍼 주머니에 더는 현금이 들어가지 않자, 먼저 인출한 돈다발을 잠시 지구대에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 경위는 800만원을 추가 인출하려고 은행으로 향하려던 A씨를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그와 동시에 경찰서 수사과에 연락했고, 보이스피싱 수거책 검거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검거팀은 횡성농협 주차장으로 이동해 A씨가 인출한 현금을 가짜 돈으로 바꿔 A씨의 차량에 놓아둔 뒤 잠복근무에 나섰다.
얼마 뒤 검거팀은 A씨의 차량에 놓아둔 가짜 돈 봉투를 꺼내 가려는 B(33)씨를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B씨는 경찰에서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SNS 광고를 보고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j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