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5년차 신라 월성, 새로운 과제는 '정비'
C지구 조사 마치고 복토 예정…1호 해자 발굴도 마무리 단계
"최종 정비 방안은 조사 종료 후 논의해야 할 것"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지난 2014년 12월 12일 개토제(開土祭)를 시작으로 역사적 발굴에 돌입한 경주 월성(月城·사적 제16호)이 조사 5년차를 맞았다.
파사왕 22년(101)에 조성했다는 월성은 신라 왕성이 있던 매우 중요한 고대 유적으로, 이전에 전체 구역이 조사된 적이 없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반달 모양인 월성을 서쪽부터 순서대로 A∼D지구로 나누고, A지구와 C지구를 먼저 발굴했다.
C지구에서는 땅을 3m 정도 파 내려가는 탐색조사를 통해 현재 지표 아래에 통일신라시대 문화층 2개와 신라시대 문화층 5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8세기 관청으로 추정되는 많은 건물터 유적을 찾아냈다.
A지구 서쪽 문터 유적에서는 5세기에 묻은 것으로 보이는 키 160㎝ 안팎 인골 2구와 토기 4점이 발견됐다. 이 유골은 신라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그 위에 성벽을 조성한 인신공희 사례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또 월성 북쪽에 길쭉한 띠 모양으로 조성한 해자에서는 글자를 쓴 묵서 목간과 수많은 식물 씨앗, 동물 뼈가 나왔다.
연구소가 2일 공개한 성과는 대부분 해자 출토품이었다. A지구와 B지구 북쪽에 있는 1호 해자에서는 4∼5세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방패 2점과 의례용 배 모형이 출토됐고, 단양 신라 적성비에 등장하는 지방관 명칭인 '당주'(幢主)라는 글자를 기록한 목간도 나왔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C지구에서 발굴하지 않은 지역은 유구(遺構·건물의 자취)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월성 C지구는 조사가 거의 완료됐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자는 신라가 통일한 이후 돌을 쌓아 만든 석축(石築)해자 아래에 구덩이 형태 수혈해자가 있다"며 "1호 해자는 수혈해자까지 모두 발굴했으나, 2∼3호 해자는 기술이 발달할 후대를 위해 위쪽 석축해자만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올해 A지구와 C지구, 해자에서 발견한 유물 11만여 점을 다시 한번 전수 조사하는 한편 C지구 조사 보고서 작성을 시작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보고서를 완성하고, A지구 서쪽 성벽을 절개해 조사할 예정이다.
아울러 문터 유적 인골, 나무 방패, 배 모형 등 당대 의례나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을 심층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C지구와 1호 해자 조사가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월성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 사안은 '앞으로 유적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다.
6기로 나뉘는 월성 해자는 정비 방침이 확정된 상태다. 이미 동쪽에 있는 1기는 담수 해자로 만들어졌고, 또 다른 2기는 물을 채우지 않은 건(乾)해자로 정비됐다. 여기에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최근 나머지 해자 3기를 90%로 축소하되 건해자를 포함해 모든 해자에 물이 흐르도록 정비하기로 뜻을 모았다.
문제는 월성 내부인 C지구다. 유적을 흙으로 덮은 뒤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유적임을 알리는 시설물을 둘지 결정되지 않았다.
이 소장은 "유적 위에 건물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월성이 신라 왕성임을 알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B지구와 D지구가 아직 발굴되지 않아 C지구 정비 기준 시점과 방안을 확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C지구만 하더라도 시기상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건물터 유적이 중첩돼 나타난다"며 "최종 정비 계획은 조사가 종료될 무렵 연구소와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월성 해자에서는 문화재의 보고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유물이 발견됐다"면서 "나중에 해자에서 어떤 문화재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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