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제주 4·3 특별법' 조속 처리로 유족 눈물 씻어줘야
(서울=연합뉴스)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뜨릴 즈음이면 제주도민들은 가슴 깊이 묻어뒀던 아픔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제주 4·3'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제주 왕벚꽃이 아이러니하게도 도민들에게는 슬픔의 전령사인 셈이다.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사망자가 3만명이 넘는다. 인구의 10%였다. 희생자 숫자만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중 3분의 1은 어린이와 여성, 노인이다. 국가 폭력이 얼마나 무자비했나를 보여준다. 사망자 유족과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해와 치유를 위한 노력이 미흡한 탓이다.
'제주 4·3 특별법' 개정안이 표류하면서 정치권은 제주도민들의 상처를 보듬기는커녕 분노만 안겨줬다. 국회는 4·3 제71주년을 앞두고도 특별법 개정에 합의하지 못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개정안 발의 16개월 만인 지난 1일에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개정안에는 4·3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의 법적 근거와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를 명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군사재판 무효화로 인한 법적 안정성 침해, 1조8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배상액 규모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 일정 등을 고려하면 개정안의 연내 국회 통과는 불투명한 상태다.
4·3은 발생한 지 50여년이 지난 뒤에야 국가 차원에서 진실의 문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그 결실이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제정된 제주 4·3 특별법이다. 그러나 이 특별법에는 피해자들을 위한 개별적이고 실질적인 구제방안이 빠져 있다. 위령 사업이나 의료·생활지원금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방안은 담겨 있지 않다. 불법으로 행해졌던 군사재판의 판결을 무효로 하는 내용도 없다. 그래서 발의된 것이 특별법 개정안이다.
특별법 개정안의 발목을 잡은 배·보상과 군사재판 무효화도 거의 사회적 합의를 이룬 상태다. 4·3 희생자 배·보상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 모두 공약으로 내건 사항이다. 군사재판 무효화는 4·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으로 전국 형무소로 끌려가 수감된 이른바 '4·3 수형인'들이 최근 재심 청구 소송에서 무죄 취지의 선고를 받음으로써 법적 근거가 이미 마련됐다.
4·3은 해방공간에서 좌우익이 난립하던 시대에 이념 충돌로 빚어진 비극적인 역사다. 죄 없는 국민들이 사살되고 불법적으로 수감돼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2천500여명에 달하는 '4·3 수형인'들은 재판 절차도 없이 차가운 감방에 내던져졌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수록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더 깊어갈 뿐이다. 특별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가 절실한 이유다. 원희룡 제주지사의 말처럼 "4·3 특별법은 좌우 이념을 떠나 화해와 상생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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