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카슈끄지 자녀에 수십억 집·돈 제공…'입막음용'

입력 2019-04-02 11:34
사우디, 카슈끄지 자녀에 수십억 집·돈 제공…'입막음용'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지난해 10월 자국 암살팀에 의해 살해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자녀들에게 고가의 집과 매달 1천만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우디의 전·현직 관리 등은 정부가 피살된 카슈끄지의 자녀 4명에게 보상 차원에서 각각 400만 달러(약 45억원) 상당의 주택을 제공하고 매달 1만 달러(약 1천130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카슈끄지 살해 용의자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고 나면,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카슈끄지의 두 아들과 두 딸에 각각 수천만 달러의 보상금이 추가로 지급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살만 국왕이 승인한 이 조처는 6개월 전 정부가 보낸 암살팀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카슈끄지 살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못하도록 가족들을 자제시키기 위한 조처라고 관리들은 설명했다.

다만,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은 카슈끄지 자녀들에 대한 보상이 범죄 또는 자연재해 피해자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오랜 정부 관행 차원이라면서, 보상을 받은 카슈끄지 가족이 침묵을 지킬 의무는 없다고 해명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배후로 의심받는 카슈끄지 살해사건은 전 세계적인 논란과 비판을 촉발했지만, 정작 그의 자녀들은 정부와 왕실을 혹독하게 비판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부유한 사우디 왕실이 국제적인 공분을 일으킨 카슈끄지 사건을 돈으로 묻으려 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10월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는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를 위로하며 악수하는 사진을 공개해 '억지 화해'를 연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재 제다에 사는 아들 살라는 정부의 '보상 조치'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등 카슈끄지의 자녀들은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WP의 질의에 답변을 피했다.

미국에 거주하며 WP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카슈끄지는 지난해 10월 결혼 관련 서류를 받으러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됐다.

국제사회는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거침없이 비판한 카슈끄지 살해에 왕실 개입을 의심했으나 사우디는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 음성 파일 등 증거들이 나오면서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의 귀국을 설득하려고 터키에 파견된 현장 팀장이 살해를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고, 사우디 검찰은 현장 책임자 등 11명을 기소해 5명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사우디 법에 따르면 용의자들이 사형 판결을 받을 경우 카슈끄지 가족이 관용을 베풀고 수천만달러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카슈끄지의 자녀들이 보상금을 받기 위해 부친을 살해한 용의자들을 용서해야 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직 사우디 관리들과 전문가들은 사우디 법원과 정부가 이런 합의를 유도해 고위급의 지시를 받고 카슈끄지 살인에 가담한 하급 요원들의 사형 집행을 막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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