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직업들…"21세기엔 '기본소득'이 답이다"

입력 2019-04-02 09:41
사라져가는 직업들…"21세기엔 '기본소득'이 답이다"

신간 '노동의 미래와 기본소득', 시대 분석과 방안 제시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최근에 한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 차량 공유 카풀 서비스를 추진하려 하자 택시 업계가 크게 반발했다. 이는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고, 한 택시기사가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양측은 일정 시간대에만 카풀 서비스를 허용하는 '대타협'으로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이런 갈등은 비단 택시 업계에만 국한된 일일까?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노동 환경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업무 영역에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파고들면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직업의 불안정성도 커져만 간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와 택시 업계의 충돌은 그 상징적 사건일 뿐이다. 과거에 택시 운전은 꽤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직업이었으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덕분에 누구나 베테랑 택시기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여기다 고객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플랫폼의 등장으로 차량 공유 서비스가 가능해져 택시기사라는 직업의 불안정성이 한층 커졌다. 무인 자동차까지 상용화하면 차량을 운전해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은 아예 사라질 수 있다.

택시 운전뿐 아니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전문화한 직업도 이런 위험으로부터 절대 안전하지 않다. 인공지능이 이들 전문가의 일 가운데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어서다.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로 볼 때, 인공지능이 기초적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의료 진단을 하는 것도 그다지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듯하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가리지 않고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미래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북미 서비스노동조합(SEIU) 조합장을 지냈던 앤디 스턴이 '퍼레이드'지 편집장 출신의 리 크래비츠와 함께 저서 '노동의 미래와 기본소득'을 펴낸 데는 이런 시대적 고민이 있었다. 미국 노동조합의 역사를 새로 쓴 대담하고 통찰력 있는 리더로 불렸던 앤디 스턴은 자신이 '노동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며 스스로 조합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임금과 고용이 정체된 경기회복, 소수의 사람에게만 더 많은 부가 편중되는 경제성장을 지켜보며, 21세기 경제에서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노동조합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발전으로 날로 급변하는 경제와 노동 환경 때문이다.

조합장에서 물러난 스턴은 이후 5년 동안 노동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탐구했다. 이번 책은 그 고민과 탐구의 여정을 담은 결과물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노조 지도자와 노동운동 활동가는 물론 기업 CEO, 미래학자, 경제학자, 투자자, 역사가, 정치인 등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의견을 나누고 기술 발전이 경제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통찰했다.

저자는 지금 진행되는 기술의 발전이 과거와 분명히 다르며, 노동시장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기술의 발전은 노동시장의 환경을 크게 바꿔놓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노동의 미래는 암울한 것일까? 경제학자들은 과거 산업혁명 때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들이 만들어지리라 낙관한다.





하지만 그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들이 결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일자리'라고 말할 때 흔히 생각하는 정규직 채용과 안정적 소득, 복지 혜택 등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은 노동자가 하던 업무를 잘게 쪼개서 가능한 한 기계나 소프트웨어로 대체하거나 임시직 노동자로 대체하려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에 저자는 "이제 노동조합을 넘어 더 먼 곳을 바라보아야 할 때"라면서 자칫 '고부가 가치 직업에 종사하는 극소수의 고소득자'와 '수많은 실업자'들만이 존재하는 기형적 사회의 대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의 실시를 제안한다. 20세기에 유효했던 방식은 더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으며, 기본소득은 우리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프로테스탄트적 노동관이 상식처럼 굳어진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수용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을 우려로 몰아넣은 기술적 진보를 자아실현과 공공 이익을 끌어내는 힘으로 바꿈으로써 곤경에 빠진 21세기의 경제를 회복시키는 잠재적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자유와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독립을 선사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할 기회를 준다.

이는 경제 상황, 특히 일자리 문제로 고심하는 우리 사회에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기조에 따른 단기적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기술 발전에 따라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직업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흐름은 되돌리기 쉽지 않아서다. 기본소득에 대해 일부에서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프레임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코앞으로 다가온 현실의 대안에 대해 사회적 토론과 실험이 이뤄졌을 때 좀 더 진보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는 이 책의 역설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참고로, 국내에서도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이미 나오고 있다. 예컨대, 경기도는 이달부터 '청년 기본소득' 지원사업을 실시해 도내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이 소득, 직업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분기별로 25만원씩 모두 100만원을 '지역 화폐'로 받도록 했다.

갈마바람 펴냄. 박영준 옮김. 388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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