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닌 '사진작가' 마그리트를 만나다

입력 2019-04-01 19:22
화가 아닌 '사진작가' 마그리트를 만나다

용인 뮤지엄 그라운드서 순회전…사진 130여점과 영상 2점 전시



(용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중절모 아래 얼굴을 사과로 가린 신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파이프, 푸른 하늘에 뜬 바위성…….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미술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기기묘묘한 그림들은 '매트릭스'부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에 영감을 줬다.

마그리트 그 자신도 사진작가이면서 영화감독이었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왕성하게 찍은 사진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후 15년이 지나서였다. 마그리트가 주변에 나눠주면서 세계 곳곳에 흩어진 사진만 해도 1천500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일 경기도 용인 뮤지엄 그라운드에서 개막하는 '르네 마그리트, 더 리빌링 이미지(The Revealing Image): 사진과 영상'은 그중에서 사진 원본 130여점과 영상 2점을 추려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다.

소장품이 4만5천 점에 달하는 벨기에 샤를루아 사진미술관이 함께한 행사로, 멜버른과 홍콩, 타이베이를 거쳐 용인에 왔다.

1일 만난 자비에 카노네 샤를루아 사진미술관 관장은 "마그리트 사진은 처음 발굴됐을 때만 해도 그의 회화와 같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면서 "그러다 갤러리 등 미술시장에서 마그리트 사진을 예술로 평가하면서 대우가 달라졌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 가족 앨범 ▲ 가족 같은 관계 ▲ 화가 같지 않은 화가 ▲ 재현의 반복 또는 새로운 형식의 사진 ▲ 사진의 한계, 마그리트와 영화 ▲ 가짜 거울의 6개 공간으로 짜였다.

작게는 손바닥만 한 사진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마그리트 대표작들이 사진으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통찰력'(1936)은 양복을 갖춰 입은 채 새 한 마리를 그리는 남성 화가의 시선이 새가 아닌 '알'을 향한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통찰력' 레플리카 액자 왼쪽에는 '통찰력' 작업 중인 화가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 걸렸다.

카노네 관장은 "이 작품을 그리고 있는, 화가로서의 자신을 또 하나의 사진에 담은 것"이라면서 "작가로서의 자신을 여러 겹으로 표현했다"라고 설명했다.

아내 조제트와 자신이 겹쳐 선 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진은 분열된 자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품 '먼 곳을 보는 시선'(1927 또는 1928)과 통하는 바가 있다.

이번 전시에는 마그리트가 1942년과 1955년 촬영한 영상 2점도 나왔다. 1955년 작품은 마그리트가 예술적으로 교감한 친구들과 주말을 즐기면서 찍은 영화다.

기록성을 띤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수많은 작가와 교류했으며, 프랑스와는 구분되는 벨기에 초현실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마그리트의 삶과 예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전시는 7월 10일 끝난 뒤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이어진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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