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의회, 정당방위법 통과…"총기 남용 가능성" 우려도

입력 2019-03-29 20:08
이탈리아 의회, 정당방위법 통과…"총기 남용 가능성" 우려도

反난민 부총리 살비니 '반색'…법관들은 "법안 필요성에 의문"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의회가 주거지나 사업장을 침범한 강도나 절도범에게 총기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정당방위법안'을 통과시켰다.

29일 코리에레델라세라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탈리아 상원은 하원의 승인을 거쳐 넘어온 이 법안을 전날 표결에 부쳐 찬성 201표, 반대 38표, 기권 6표로 압도적으로 가결했다.

이 법안은 주택이나 사업체를 침입해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강도나 절도범에 맞서 방어 행위를 하는 것은 항상 적법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유지 침입, 강도 등의 범죄에 대한 형량을 늘린다는 조항도 담았다.

법안 통과에 따라 앞으로는 자신의 소유 공간을 침범한 강도 등에게 위협을 느껴 총을 쏴 상해를 입힌 사람들의 경우 정당방위가 인정돼 처벌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집이나 사업체에 침입한 절도범이나 강도에게 총을 쏴 다치거나 사망케 할 경우 위협에 비해 과도한 대응을 했다고 판단될 경우 판사들은 총격을 가한 사람들에게 상해죄나 살인죄로 징역형을 선고해 왔다.



해당 법안의 도입에 앞장선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상원 표결 직후 기자들에게 "오늘은 이탈리아에 매우 의미 있는 날"이라며 "범죄자들은 오늘부터 이탈리아에서 강도 행위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법부와 야당은 해당 법안이 무분별한 총기 사용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탈리아법관연합의 프란체스코 미니시 회장은 개별 사건에서 법관들이 법 해석에 어려움을 느낄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범죄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총을 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대중에게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총기사용 반대 운동가인 조르조 베레타는 작년의 경우 강절도 사건과 연관된 사망 사고는 16건으로 3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며 "이탈리아의 범죄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법안이 꼭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내무부에 따르면, 작년에 살인 범죄는 전년에 비해 16.3%, 무장강도 범죄는 12.3% 감소하는 등 이탈리아에서는 강력 범죄가 최근 줄어드는 추세다.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극우성향의 정당 '동맹' 소속인 줄리아 본조르노 공공행정 장관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달아나는 사람을 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법 해석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동맹'은 강경 난민 정책과 함께 치안 강화를 밀어붙이며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작년 3월 총선에서 17.4%의 득표율을 기록한 동맹은 현재는 35% 안팎의 지지율로 연립정부 파트너인 집권당 '오성운동'을 제치고 이탈리아 정당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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