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대한항공 사내이사직 박탈…주주 손에 밀려난 첫 총수(종합2보)

입력 2019-03-27 12:40
수정 2019-03-27 13:32
조양호, 대한항공 사내이사직 박탈…주주 손에 밀려난 첫 총수(종합2보)

대한항공 주총…국민연금·외국인주주 '반대' 36%로 연임안 부결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은 아냐"…의결권자문사 "자본시장 촛불혁명" 평가도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사내이사에서 물러나게 됐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 5층 강당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 있는 주식의 73.84%(9천484만4천611주 중 7천4만946주)가 표결에 참여했다.



관심이 집중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09%, 반대 35.91%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려면 찬성 66.66% 이상이 필요하지만, 이날 2.5% 남짓한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해 사내이사 자리를 지켜내지 못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 경영권에 상실하게 됐다.

특히 최근 한층 강화된 주주권 행사에 따라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에 제한을 받는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자본시장 촛불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대한항공 주식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180640](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11.56%,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20.50%다.

기타 주주는 34.59% 등이다. 기타 주주에는 기관과 개인 소액주주 등이 포함돼 있다.

조 회장의 연임안 부결은 전날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는 전날 회의에서 조 회장 연임안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현재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날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 등도 조 회장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조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

해외 공적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SBAF), 캐나다연금(CPPIB),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도 의결권행사 사전 공시를 통해 조 회장 연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런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움직임도 외국인·기관·소액주주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벌인 조 회장 연임 반대를 위한 의결권 위임 운동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이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부결에 대해 "사내 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조 회장이 여전히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이고,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주총장 앞에서는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3일부터 약 2주간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 권유 활동을 한 결과 소액주주 140여명에게서 51만5천907주(0.54%)를 위임받았다"고 밝혔다.

조양호,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주주 손에 밀려난 첫 총수 / 연합뉴스 (Yonhapnews)

주총장 안에서도 조 회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이사회의 경영·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소액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참석한 김남근 참여연대 합동사무처장은 "회사가 기내면세품 등 납품 과정에서 조양호 이사와 세 자녀가 중간수수료를 챙기고 회사에 196억원 넘는 손해를 입힌 상황에 대해 이사회가 제대로 된 관리를 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주주 자격으로 참석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땅콩회항 사건부터 지금까지 조 회장 일가로 인해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진해운 지원으로 회사에 8천억원대 손실을 미치고 일감몰아주기 등으로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사회가 어떤 관리를 하고 감사를 했느냐"고 물었다.



한때 주총장에서는 이사회 운영실태를 문제삼는 주주들과 의안을 신속히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주주들간에 고성이 오가는 등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조기 정착,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의 성공적인 서울 개최 등을 위해 "항공전문가인 조 회장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조 회장 경영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dk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