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을 울린' 세터 이승원 "저도 울컥하고 감사했어요"
"혼날 때 당연히 서운했죠…우승하면서 감사한 마음만 남았어요"
(천안=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최태웅(43) 현대캐피탈 감독은 2018-2019 프로배구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확정한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최 감독을 울린 사내는, 세터 이승원(26)이다.
이번 시즌에 처음으로 주전 세터로 뛴 이승원은 최 감독에게 참 많이 혼나고, 일부 팬들에게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굳건하게 버텼고, 챔프전 우승을 정확하게 '배달'했다.
현대캐피탈은 2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도드람 2018-2019 V리그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대한항공을 세트 스코어 3-1(25-20 30-32 25-19 25-20)로 꺾고, 2시즌 만에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되찾았다.
이승원은 당당하게 우승의 주역이 됐다.
최 감독이 3차전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이승원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다가 눈물을 흘려, 이승원의 이름이 더 회자하기도 했다.
26일 현대캐피탈 축승회에서 만난 이승원은 "감독님께서 저를 안아주시면서 '너 때문에 울었다'고 하시더라. 처음에는 무슨 말씀하시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영상으로 감독님께서 우시는 장면을 보고 나도 울컥했다. 그리고 참 감사했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자유계약선수(FA) 전광인을 영입하면서 세터 노재욱을 보상선수로 내줬다.
이승원은 충실하게 시즌을 준비했지만, 지난해 10월 정규리그 개막과 동시에 부상을 당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뒤에도 '다시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최 감독은 때론 이승원을 질책하고, 때론 격려하며 한 시즌을 보냈다.
최 감독은 "이승원은 정말 열심히 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승원은 "당연히 감독님께 혼날 때는 신경도 쓰이고, 힘들기도 했다. 노재욱 선배가 워낙 잘하는 세터라서 비교 대상이 되는 게 더 힘들었다"고 고백하면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하면서 서운함은 모두 사라졌다. 감독님과 팬들께는 고마운 마음뿐이다. 노재욱 선배와 나를 비교하는 시선을 이겨내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아서 기쁘다"고 했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현대캐피탈은 주전 세터 노재욱이 허리를 다친 후, 대한항공에 허무하게 패했다.
이승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올해는 아예 노재욱 선배 없이 시즌을 시작했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왔다. 지난 시즌처럼 허무하게 패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정규리그에서 자주 부상의 덫에 걸렸던 이승원은 포스트시즌에서 더 적극적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부상이 이어질 때는 '난 이렇게 자주 다칠까'라고 좌절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포스트시즌에 돌입하니 '아파도 뛰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자꾸 넘어지고 여기저기에 부딪힌 것도 '공만 잡자'라고 생각해서다"라고 전했다.
축승회에서 이승원과 마주친 문성민, 신영석 등 현대캐피탈 선배들은 "올 시즌 가장 고생하고 잘한 선수가 이승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생을 견디고, 동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이승원에게도 '세터의 고집'이 생겼다.
우리카드와의 플레이오프(PO) 2차전 1세트 22-23, 23-24 위기에서 주포 전광인이 아닌 신예 허수봉에게 연속해서 공을 올려준 게, 대표적인 예다. 당시 허수봉은 두 차례의 공격을 모두 성공했다.
최태웅 감독은 "승원이와 내 생각이 달랐다. 그런데 그때는 승원이의 판단이 옳았다"고 웃었다.
이승원은 "허수봉이 잘 때려서 나도 살았다. 수봉이는 스코어를 보고 있지 않아서 마음 편했다고 하는데, 나는 점수를 알고 있어서 더 부담스러웠다"고 웃은 뒤 "감독님께서 그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한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최 감독은 코치들에게 "챔프전에서는 이승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믿고 가자"고 했다. 이승원은 승리로 보답했다.
길고 힘겨웠던 시즌이 끝났다. 이승원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확정한 오늘(3월 26일)이 내 배구 인생의 전환점이다"라고 했다. 현대캐피탈에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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