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담판' 결렬 곧 한 달…대화-대치 길목에 선 北美

입력 2019-03-26 11:43
수정 2019-03-26 14:05
'하노이 담판' 결렬 곧 한 달…대화-대치 길목에 선 北美

美제재→北연락사무소 철수→美 "추가제재 안해"→北 일부 복귀 '핑퐁' 행보

金 4·11 최고인민회의 메시지 주목…특검멍에 벗은 트럼프 대북행보 탄력받을듯

美 비건 중국방문 주목…北김혁철과 실무협상 언제 재개할지 '촉각'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제2차 북미정상회담(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이 결렬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에 북한과 미국은 연일 미묘한 '밀고 당기기'를 이어가는 형국이다.

합의 없이 회담을 끝낸 뒤 잠시 소강 국면을 보낸 북미는 최근 마치 '핑퐁게임'을 하듯 강온책을 주고받으며 조심스럽게 향후 행보를 모색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올해 첫 대북 제재를 발표하며 북한을 압박했고, 북한은 여기에 반발이라도 하듯 약 6시간 후인 22일 오전 9시 20분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철수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평양에서 각국 외교관과 기자들을 불러놓고 개최한 브리핑에서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고 시사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첫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미 당국에서 마련한 추가 대북제재를 자신이 철회시켰다며 유화 메시지를 보냈고, 북한은 25일 오전 8시 10분께 일부 인원을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 복귀시켰다.

이 모든 게 한국 시간 기준으로 지난 22일 오전부터 25일 오전까지 사흘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북미간 이 같은 조치들의 인과관계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한반도 정세의 큰 틀에서 보면 '포스트 하노이' 북미협상의 새 판짜기를 위한 모색 과정의 일환이라는 분석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북미는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대화냐, 대치냐의 갈림길 위에 서 있지만, 양측 모두 판을 깰 생각이 없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최선희 부상의 회견부터 개성 연락사무소 철수까지 북한이 보여준 반발은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고, 미국 역시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최 부상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궁합(chemistry)을 언급한 점,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한다고 언급한 점 등이 그 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26일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제재는 없다는 트윗으로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다"며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에서 북측 인원을 철수했다가 신속히 복귀하는 모습에서 제재해제를 원하는 북한이 시간에 쫓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이 한 차례 몽니를 부렸지만, 그 안에는 '미국이 더 강하게 나오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이 녹아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제재' 철회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대화 모멘텀으로 만들려는 게 북한의 입장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제 외교가는 4월 양측 정상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음 달 초 개최할 것으로 예상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나 4월 11일로 예정된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당 중심국가인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나 정치국 회의에서 주요 정책과 노선을 선언하고 직후에 최고인민회의 정기회의를 열어 관련 법안이나 결정을 채택해 정책을 뒷받침해왔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4월 최고인민회의 등 주요 계기에 작년부터 이어온 북미 및 남북 대화 노선을 재확인할지, '새로운 길'을 공식화할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또 김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집사'격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을 러시아로 보내 방러 카드를 띄운 만큼 이르면 4월 중으로 전격적인 러시아 방문을 통해 '배후 다지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의 멍에를 거의 벗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대북 행보를 보일지도 관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를 단행했다가, 추가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최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그러나 이제 국내정치의 중요한 고비를 넘어서게 된 만큼 대화, 압박 어느 쪽이든 보다 자신감 있게 대북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외교가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비건 대표는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표들을 만나 하노이 회담 결과를 공유했고, 19일 영국 런던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카운터파트를 만나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진전시키기 위한 공조방안 등을 논의한 데 이어 24일부터 중국 베이징(北京)에 체류하고 있다.

그는 중국측 카운터파트인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나 대북제재이행 준수를 촉구하는 한편 북한을 설득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원곤 교수는 "중국이 대북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만큼 비건 대표가 중국 측에 확실한 제재를 유지해서 북한이 전향적인 일괄타결의 완전한 비핵화로 나올 수 있도록 협조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겠느냐"고 예측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비건 대표의 방중에 대해 "북한과 중국 간 거래가 제일 많기 때문에 중국이 제재의 '루프홀(구멍)'이 되지 않도록 촉구하는 차원일 것"이라며 "북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면 중국이 변해야 하므로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전략적 소통을 확대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문제 주요 당사국과 관련국들을 두루 접촉한 비건 대표가 언제쯤 방북 등 형식으로 북측과 접촉할지도 주목된다.

하노이에서 북미간 현저한 입장 차이가 확인됐지만 상대방의 우선순위 의제를 처음으로 확인한 만큼 본격적으로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의 조합을 모색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다는 시선도 있다.

정상회담 결렬 이후 곧바로 고위급 회담으로 넘어가는 것은 북미 모두 부담이 큰 만큼 양국이 대화를 재개한다면 비건 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채널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그에 앞서 북미 뉴욕채널과 남북 및 한미, 북미 정보당국간의 물밑 소통도 치열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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