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형 명의로 차 빌린 10대 5명…바다 추락 '참변'(종합3보)

입력 2019-03-26 18:14
수정 2019-03-26 19:06
동네 형 명의로 차 빌린 10대 5명…바다 추락 '참변'(종합3보)

대면 없이 휴대전화로 차량 인수 '허점'…경찰 "운전자·사고 경위 파악 중"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이재현 박영서 기자 = 26일 강원 강릉에서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해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10대 남녀 5명이 숨졌다.

이들은 대면 확인절차 없이 차를 빌릴 수 있는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해 운행하다가 사고가 났다.

경찰은 이들이 연령 제한이 있는 카셰어링을 이용하기 위해 동네 형 명의로 차를 빌렸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렌터카 몰고 가다 가드레일 '쾅'…3m 아래 바다로 추락

사고는 강릉시 강동면 옥계면 금진리 심곡항∼금진항 사이 해안도로인 '헌화로'에서 발생했다.

사고 신고는 이날 오전 6시 31분께 접수됐다. "차 한 대가 도로를 이탈해 바다로 떨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과 해경은 표류 중인 차량을 확인, 남녀 5명을 구조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모두 숨졌다.

숨진 5명은 김모(19·동해시)군 등 남성 3명과 김모(18·동해시)양 등 여성 2명으로 확인됐다.

사고 직후 숨진 김양에게서 언니의 신분증이 나와 한때 사망자 가운데 유일한 대학생으로 알려졌으나, 유족 확인 과정에서 동생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숨진 상태로 발견된 10대 5명의 신원 확인 중 본인의 신분증이 아닌 것이 나와 일부 신원파악에 혼선이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차를 빌려 강릉 방향으로 달리다 헌화로 급커브길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3m 아래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새벽 4시에 동네 형 명의로 카셰어링…2시간 만에 참사

경찰은 숨진 10대들이 유명 카셰어링 업체의 차량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네 형 A(22)씨의 명의를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고모(19)군 등은 이날 오전 4시 40분께 동해시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카셰어링 차고지에서 흰색 코나 승용차 1대를 빌렸다.

차량 이용 시간은 사고 당일 오전 4시부터 오후 7시까지였다.

'강릉 승용차 추락' 10대 남녀 5명 숨져…숨진 동생이 대학생 언니 신분증 소지/ 연합뉴스 (Yonhapnews)

해당 카셰어링 업체의 차량을 이용하려면 만 21세 이상, 운전면허 취득 1년 이상이어야 예약 또는 이용이 가능하다.

이들 중 2명은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었으나 이 같은 카셰어링 서비스 이용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동네 형 A씨의 명의를 빌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2시간여 뒤인 오전 6시 31분께 이들이 이용한 승용차는 헌화로 인근 바다로 추락한 채 발견됐다.

이들이 이용한 카셰어링은 기존 렌트 방식보다 차를 빌리는 과정에서 본인 확인절차가 미흡하다.

대면 확인 없이 원격으로 결제부터 차량 인수가 가능한 탓에 어른 계정으로 10대 청소년도 차량을 운전하다 사고를 낼 위험이 크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카셰어링 가입 시 등록한 휴대전화 기기로만 예약과 이용을 할 수 있게 하는 디바이스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지난해부터 추진 중이나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 "급커브 길에서 핸들 꺾지 못한 듯"

사고가 난 헌화로는 해안 절벽 아래를 따라 커브를 돌 때마다 숨겨진 비경이 그림처럼 다가오는 곳이어서 동해안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 즐겨 찾는 드라이브 코스다.

1998년 개설된 헌화로는 바닥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한 바다를 끼고 있어 유명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개설 당시 가드레일의 높이가 1.2m였으나 2008년 너울로 파도로 도로가 훼손된 것을 계기로 보수공사를 하면서 0.7m로 낮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바닷물에 부식되는 철제 난간을 FRP 소재로 바꿔 녹이 슬거나 부식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턱이 낮은 데다 가드레일이 쉽게 부러지는 소재여서 이날 추락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민과 경찰은 차량이 속력을 낼 구간이 아닌 심한 커브길에서 추락 사고가 난 것에 다소 의아해하는 모습이다.

이날 아침 산책을 하다 차가 바다에서 전복된 것을 목격한 주민 이희왕(66)씨는 "여기서 추락 사고가 난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에 급브레이크에 의해 생기는 타이어 자국인 스키드 마크가 없다는 점 등을 토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또 차량 블랙박스 영상과 CCTV 화면을 확인해 누가 운전대를 잡았는지,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등을 살필 계획이다.

경찰은 또 이날 오전 6시께 금진항 횟집 거리에서 이들과 차량을 봤다는 주민들의 목격 진술로 미뤄 사고가 오전 6시에서 6시 30분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쪽 도로가 급커브가 많아 매우 위험하지만 심한 커브로 빨리 달릴 수 없기 때문에 평소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며 "운전자가 커브 길에서 (핸들을) 꺾지 못하고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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