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인 성차별에 맞선 미국 여성대법관

입력 2019-03-25 09:50
합법적인 성차별에 맞선 미국 여성대법관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미국의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내 여성 인권 향상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그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1933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50년대 초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여자는 고작 2%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남자들이 앉을 자리를 빼앗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콜롬비아 로스쿨로 전학하고 졸업한 이후에도 그는 남자 동기들과 달리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로펌에 취직할 수 없었다.



1970년대 럿거스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던 긴즈버그는 여성 등 소수자를 향한 법에 명시된 차별에 대해 알게 돼 성차별과 관련된 대법원 소송을 맡는다. 대법원 사건 6건 중 5건에서 승소했다. 당시 미국 여성해방 운동과 맞물려 긴즈버그가 맡은 소송은 사회 이목을 끌었다.

1980년 연방상소법원 판사로 임명된 긴즈버그는 1993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 지명으로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 됐다. 대법관이 된 이후에도 그는 소수자를 대변하며 다수 의견에 반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긴즈버그가 걸어온 길은 미국 내 성차별과 유리천장이 제거된 역사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과거의 합법적인 성차별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긴즈버그가 변호한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 사건', 대법관으로서 첫 여성 인권 사건이었던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 주 사건' 등이 그런 역사를 대변한다. 긴즈버그가 요구한 것은 단순했다. 남성만 입학할 수 있는 군사학교에 여성의 입학을 허가하고, 동일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지급하는 것 등이었다.

긴즈버그가 소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마티 긴즈버그 헌신적인 사랑 덕분이었다. 루스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한 마티는 집안일도 맡아가며 아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아내가 연방대법관 후보에 오르자 네트워크를 활용해 루스가 대법관으로 지명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영화는 긴즈버그와의 직접 인터뷰뿐 아니라 그의 자녀와 손녀 등 가족, 법관 동료, 대학과 로스쿨 동기들의 인터뷰를 풍부하게 담아냈다. 특히 대법관 청문회 당시 화면을 삽입해 관객이 긴즈버그가 걸어온 길에 직관적으로 접근하도록 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아직도 연방대법관으로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낸다. 미국 젊은이들은 그를 '노토리어스 RBG'(래퍼 노토리어스 BIG의 이름을 패러디한 이름)라고 부르며 열광한다. 이제 긴즈버그라는 이름은 그가 차별에 맞서 만들어낸 역사와 함께 새로운 세대의 희망이 됐다고 영화는 평가한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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