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제지' 김학의 수사 앞당겨지나…성상납 뇌물죄부터 할듯
검찰과거사위 순차적 수사권고 전망…'성상납→특수강간 의혹' 수순
금품거래 확인 필요성도 제기…이전 수사팀에 '직권남용' 적용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특수강간 및 성상납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2일 외국으로 출국하려다 제지당하면서 관련 사건을 재조사 중인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의 성상납에 따른 뇌물 혐의에 대해 우선 수사권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이 건설업자로부터 성상납 형태의 향응을 받았다는 혐의를 두고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진상조사단은 특수강간 혐의를 보강조사한 뒤 추가로 수사권고를 하는 순차적 방식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사건을 재조사 중인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은 김 전 차관 등 이른바 '윤중천 리스트'에 등장하는 사회 고위층 인사들을 성상납 등 향응에 의한 뇌물수수 혐의로 재수사하라고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별장 성상납' 등 사건이 최근 다시 논란이 되면서 김 전 차관을 신속히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15일 김 전 차관이 아무런 의사 표시 없이 소환에 불응하자 잠적 등 가능성을 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 전 차관은 22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태국으로 출국하려다 긴급 출국금지됐다.
진상조사단은 강제수사권한이 없지만, 수사가 일부라도 시작되면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을 통해 김 전 차관에 대한 신병확보 등의 강제조치가 가능해진다.
진상조사단이 김 전 차관의 여러 혐의 중 성상납 뇌물혐의를 우선 수사권고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최근 진술에 주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전 차관에게 성상납을 한 인물로 지목된 윤씨는 지난 21일 진상조사단의 소환조사에서 성상납 사실 자체는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강간 의혹보다는 입증이 빠를 수 있는 성상납 관련 의혹을 먼저 수사권고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낳는 대목이다.
윤씨는 2013년과 2014년 두 번의 수사에서도 자신 소유의 강원 원주 별장에서 고위층 인사들에게 성상납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시인한 바 있다.
반면 진상조사단이 검토 중인 특수강간 혐의는 윤씨 등 의혹 연루자들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고, 일부 피해자들의 진술에도 일관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당장 재수사를 권고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진상조사단이 우선 성상납에 따른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재수사를 권고한 뒤 특수강간 혐의는 보강조사를 거쳐 추가로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다만 성상납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할 경우 뇌물액수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가 추후 논란이 될 수 있다.
뇌물액수가 3천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적용돼 5년 이상의 징역형 선고가 가능해지고, 공소시효도 10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1억원 이상이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해 공소시효가 15년으로 증가한다.
성상납 향응이 1억원 이상의 뇌물액수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2007년∼2008년 집중적으로 자행된 성상납 범죄는 특가법 적용이 가능해져 여전히 공소시효가 남는다.
하지만 성상납을 뇌물액수로 따져보는 것을 두고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구체적인 뇌물액수를 기준으로 형량을 나눠 규정한 특가법의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검찰은 성상납 뇌물죄의 경우 뇌물액수 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봐 특가법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뇌물죄로 기소하고 있다. 일반 뇌물죄는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어 공소시효가 5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김 전 차관과 윤씨가 성상납 이외의 금품거래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진상조사단은 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계좌 등 금품거래를 추적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수사 단서를 일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조사단은 여론이 주목하는 뇌물이나 특수강간 혐의 대신 2013년·2014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 지휘부의 권한 남용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먼저 수사권고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검찰은 2013년 경찰의 송치의견에 따라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특수강간 혐의로 수사하다 무혐의 처분을 했다. 이듬해 피해자 이 모 씨가 두 사람을 특수강간 혐의로 고소하면서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재차 무혐의 처분을 내렸었다.
그런데 2014년 수사 당시 검찰 지휘부가 사건을 2013년 수사의 주임 검사에게 다시 배당해 논란이 일었는데, 이 과정에 재량권 남용 내지 고의적인 범죄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조사단 관계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에 임하고 있다"며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정도로 조사가 이뤄진 사안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수사권고가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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