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수면 유도 메커니즘 '온·오프' 스위치 찾았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 분자 물질 NADPH 작용 규명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밤에 어느 정도 잠을 자는 게 최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수면 시간이 너무 길면 오히려 해롭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불면증과 같은 수면 장애가 오래 가, 수면 결핍이 누적되면 건강에 매우 해롭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과학자들이 수면과 노화에 공통으로 작용하는 뇌의 수면 제어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21일(현지시간) 배포된 온라인(www.eurekalert.org)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대학의 '신경회로와 행동 연구센터' 소장인 게로 미젠뵈크 교수가 이 연구를 주도했고, 보고서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핵심적인 성과는 산화 스트레스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 것이다. 산화 스트레스는 노화와 퇴행성 질환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수명 단축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밝혀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높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은 음식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데 산소를 이용한다. 산화 스트레스는 세포 내에서 산소가 불완전 연소할 때 발생한다.
미젠뵈크 교수는 "세포 안에서 산소가 불완전 연소하면 산화 스트레스가 생겨 노화와 퇴행성 질환을 유발한다"면서 "그런데 산화 스트레스가 수면을 제어하는 뉴런(신경세포)의 활성화에도 관여한다는 게 이번에 입증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 건 초파리다. 초파리는 50년 전에 '체내 시계(circadian clock)'를 가진 것으로 밝혀져 주목받았다.
초파리의 뇌에는 수면을 제어하는 일단의 뉴런(신경세포)이 있는데, 이런 뉴런은 다른 동물에서도 발견돼 인간도 갖고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미젠뵈크 교수는 이전의 연구에서, 초파리의 수면 제어 뉴런들이 '온·오프' 스위치처럼 작동한다는 걸 발견했다. 이들 뉴런이 전기 활성 상태면 초파리가 잠을 자고, 반대로 비활성 상태면 깨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수면 제어 뉴런의 스위치를 올리는 신호를 찾는 데 초점이 맞춰진 이유다.
수면 상태인지 각성 상태인지는, 과학자들 사이에 '셰이커와 샌드맨(Shaker and Sandman)'으로 통하는 두 개의 '이온 채널(ion channel)'로 흘러드는 전류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걸 연구팀은 알고 있었다.
이들 이온 채널은 뉴런들 사이의 소통에 필요한 전기 자극을 생성하고 통제한다. 그런데 수면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전류가 셰이커 쪽으로 흐른다는 걸 관찰했다.
이런 메커니즘을 알고 나서 '왜 우리가 잠을 자는가'라는 막연한 의문이, '무엇이 전류를 셰이커 쪽으로 흐르게 하는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었다.
연구팀은 멀지 않은 곳에서 그 답을 찾았다. 바로 셰이커 채널을 구성하는 분자 물질 중 하나인 NADPH 안에 해답이 있었다.
NADPH가 화학적 상태를 두 가지로 바꿔 가면서 셰이커에 흐르는 전류를 제어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 화학적 상태를 보면 세포가 겪는 산화 스트레스 수위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수면 부족이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하면 NADPH의 화학적 상태가 바뀌었다.
연구팀은 실제로 NADPH의 화학적 상태를 불빛으로 조작해 초파리를 잠들게 하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만약 셰이커 채널에 있는 NADPH의 화학적 성질을 약물로 조작할 수 있다면, 부작용이 없는 강력한 수면제가 될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한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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