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 강조 이탈리아 집권당, '부패의혹' 핵심인사 체포에 당혹
'오성운동' 소속 로마시 의회 의장 데 비토, 부패혐의 체포
디 마이오 당대표 "즉각 출당 조치"…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대형 악재'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기성 정치권의 부패를 싸잡아 비난하면서, 정직과 투명한 정치를 강조해온 덕분에 이탈리아 집권당으로 올라선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곤욕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로마 시의회 의장이자 로마시의 실질적 부시장 역할을 맡고 있는 오성운동의 중량급 인사 마르첼로 데 비토(45)가 20일(현지시간)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됐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데 비토는 로마시가 이탈리아 프로축구 AS로마의 전용 구장으로 신축을 추진하고 있는 축구장을 비롯한 건설 사업, 도심 재개발 사업 등에서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지역 기업인들에게 뇌물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법원에서 발부된 체포 영장에는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적인 역할을 이용했고, 결과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얻었다"며 그가 행정부 관료로서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소식에 오성운동 지도부는 당혹을 감추지 못하면서, 데 비토를 출당 조치하는 등 파문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 대표를 맡고 있는 루이지 디 마이오(32)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데 비토를 즉각 당에서 제명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번 일은 수치스럽고, 도덕적으로 통탄할 행위이자, 우리 모두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터진 이번 부패 추문은 오성운동에 상당한 타격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 발행되는 일간 일메사제로는 데 비토가 부패 혐의로 구속된 소식을 '뇌물, 로마의 상흔'이라는 제목 아래 21일자 1면 톱 뉴스로 전하면서 이번 일이 "오성운동을 뒤흔드는 지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9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 운동 성격으로 탄생시킨 오성운동은 작년 3월 실시된 총선에서 33%에 육박하는 표를 얻어 이탈리아 최다 정당이 됐다.
이후 극우성향의 정당 '동맹'을 연정 파트너로 포섭, 창당한 지 불과 9년 만에 집권에 성공했으나 정권을 잡은 뒤로는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세를 겪으며 고전하는 중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성운동은 약 21%의 지지율에 그쳐, 반(反)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지지율이 34%까지 수직상승한 동맹에 멀찌감치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일은 가뜩이나 무능함으로 비판받고 있는 로마시에도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전망이다.
2016년 6월부터 오성운동 소속의 비르지니아 라지(40) 시장이 이끌고 있는 로마시는 "투명성을 바탕으로 로마를 새롭게 바꾸겠다"고 호기롭게 외친 공약과는 달리 쓰레기 수거난, 열악한 대중교통, 곳곳이 파인 처참한 도로, 비바람만 약간 불면 쓰러져 차량과 행인을 덮치는 가로수 등 고질적인 병폐가 도리어 악화하며 총체적인 난국에 처해 있다.
로마 역사상 첫 여성 시장이자 최연소 시장으로, 기대 속에 취임한 라지 시장도 취임 직후부터 시 정부의 인사 난맥상으로 곤욕을 치르고, 비록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인사 관련 위증 혐의로 작년에 직접 법정에 서는 등 크고 작은 논란에 휘말리며 제대로 시정을 이끌지 못해 왔다.
한편, 라지 시장은 측근인 데 비토 의장이 체포된 이후 성명을 내고 "로마에 부패를 위한 공간은 없다"며 이번 추문에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