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찰이 증거 못찾고 3차례 보강지휘 무시"…정치수사 논란
울산지검, 김기현 전 시장 비서실장 '불기소 이유서'에 경찰 부실수사 명시
경찰의 잦은 피의사실 공표도 지적…황운하 대전청장 "검찰은 내내 비협조" 반발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검찰이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던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서실장을 불기소 처분한 것과 관련, 정치권에서 거센 파문이 일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김 전 시장은 "경찰의 선거 개입과 공작수사가 확인됐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고, 당시 경찰수사를 총지휘했던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은 해당 사건을 '김학의 사건'에 빗대며 불기소 처분 결정을 한 검찰과 한국당을 모두 비판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졌던 '지방선거용 기획수사이자 표적수사' 논란이 당시보다 더 뜨겁게 불붙는 형국이다.
김 전 시장 비서실장이 연루된 사건이 무엇인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이유와 이를 바라보는 한국당과 황 청장의 상반된 입장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 '시장후보 확정된 날, 비서실 압수수색이라니' 정치수사 논란 불거져
논란의 발단은 김 전 시장 비서실장 박모(49)씨가 아파트 건설현장 레미콘 납품 과정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으면서부터다.
경찰은 지난해 박씨와 레미콘업체 대표 A씨, 울산시 공위공무원 B씨 등 3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박씨에게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경쟁업체를 배제하고 레미콘을 다시 납품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고, 박씨는 주택건축 인허가를 담당하는 B씨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
B씨는 시공사 현장소장을 불러 A씨 업체 물량을 사용하라고 강요했으며, 결국 해당 건설현장은 A씨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공급 재개에 대한 사례의 뜻으로 박씨와 B씨에게 골프를 접대했다.
이에 경찰은 박씨와 B씨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3명 모두에게 뇌물공여와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박씨 등은 "지역업체 활성화를 위한 '지역견설산업발전에 관한 조례'에 따라 지역업체 자재 사용을 권장했을 뿐, 납품을 강요한 적이 없다"면서 "골프 비용은 각자 계산했으므로 뇌물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이 사건이 정치수사 논란의 상징적 사건으로 부상한 것은 경찰이 지난해 3월 16일 시청 비서실과 건축 관련 부서 등을 압수 수색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일은 김 전 시장이 지방선거 울산시장 후보로 공천이 확정된 날이었다.
한국당은 '경찰이 의도적으로 잔칫집에 재를 뿌렸다'고 보고 황 청장을 항의 방문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대해 황 청장은 "압수수색은 공교롭게 시기가 겹친 것일 뿐, 수사에는 어떤 의도도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수차례 해당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송치하라'고 지휘했으나, 경찰은 이를 거부하고 지난해 12월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결국 "직권을 남용했거나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볼 증거가 없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며 최근 박씨 등 3명을 불기소 처분했다.
◇ "증거 없고, 보강수사 지휘도 무시"…검찰, 불기소 이유서에 밝혀
검찰은 박씨 등 요청에 따라 최근 99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불기소 이유서'를 당사자들에게 보냈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이유서를 보면, 우선 검찰은 경찰의 수사가 전체적으로 부실투성이라고 판단했다.
이유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11일 피의자 3명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관련 조례에 따라 지역업체 자재 사용을 권고했다는 피의자들 주장에 타당한 면이 있고, 뇌물 공여·수수 역시 A씨가 골프비를 모두 부담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보고 보완수사를 지휘했다.
경찰은 그러나 "박씨가 일부 골프비를 직접 결제한 사실이 확인됐으니 이를 혐의없음으로 변경하고, 나머지 범죄사실은 처음 그대로 송치하겠다"며 재차 수사지휘를 건의했다.
여전히 기소의견으로 넘겨받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검찰은 두 차례에 걸쳐 범죄 소명 근거와 증거 수집 등 잘못된 법리 적용에 대한 보완 수사를 지휘했다.
그러나 경찰이 '구체적인 수사 대상과 방법에 대한 지휘 내용이 없는 등 적법성·정당성에 문제가 있는 부당한 수사지휘'라고 반발하며 별다른 보완 수사 없이 기소의견 송치를 고수했다고 검찰은 이유서에 명시했다.
검경은 보완 수사 지휘와 기소의견 송치를 고집하며 약 7개월을 아무 성과 없이 보냈고, 경찰은 결국 검사의 지휘를 거부하고 지난해 12월 초 3명 모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러면서 경찰은 '이 사건이 불기소되면 이는 온전히 객관적인 준법절차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그 결론은 검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는 의견을 달아 검찰 책임론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검찰은 '증거가 부족해 무죄가 선고될 것이 뻔한 사건에 대해, 불기소할 경우 검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이라면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검찰은 부실수사 외에 경찰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지속해서 언론에 흘린 것에도 잘못이 있다고 봤다.
울산시청 압수수색, 피의자들의 구체적인 혐의 등이 수시로 언론을 통해 노출됐다는 것이다.
특히 황 청장이 사건을 송치할 즈음 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에 대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검찰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발언한 것도 지적했다.
◇ 김기현 "공작수사 확실" vs 황운하 "최종 진실이라 단정 못 해"
김 전 시장과 한국당은 황 청장을 향해 강한 공세를 퍼붓고 있다.
한국당은 범죄가 안 되는 사건을 경찰이 떠벌리며 수사하는 바람에 결국 김 전 시장이 선거에서 낙선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시장은 20일 한국당이 개최한 '청와대특감반 진상조사단 및 김경수 드루킹 특위 연석회의'에서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를 들고나와 주요 내용을 직접 읽었다.
김 전 시장은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는 황 청장의 수사가 전형적인 정치개입이자, 공작수사였다는 증거자료"라며 "황 청장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계획적으로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 추단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황 청장은 경찰인지 악성 흑색선전 유포조직인지 의심스럽다"며 "황 청장은 경찰청에 있을 게 아니라 검찰청 조사실에 가서 빨리 수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만약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특검으로 밝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청장은 이날 검찰과 한국당을 동시에 겨냥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특히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김학의 사건에 빗대면서 "검찰의 무혐의 결정은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불기소 결정이 최종적인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숙해야 할 토착비리 책임자가 저를 포함해 울산경찰을 모독하는 입장을 발표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돌이켜보면 검찰은 울산경찰의 고래고기 사건 수사와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듯 경찰 수사에 납득할 수 없는 비협조로 일관했다"고 덧붙였다.
울산경찰청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했고, 증거관계에 근거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면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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