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만성 통증, 그 뿌리는 어디일까
미 텍사스대·MD 앤더슨 연구진, 척추 배근신경절 주목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의학계에선 신경세포(뉴런) 손상으로 인한 만성 통증을 신경질환으로 본다. 사지 절단 환자가 겪는 환상통(phantom limb syndrome), 뇌졸중 후 통증증후군, 손발이 저린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미국 텍사스대(UT)와 MD 앤더슨 암센터 등의 과학자들이 만성 통증의 뿌리에 가깝게 다가선 듯한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들 과학자가 지목한 부위는 척추 맨 아래의 신경세포 '다발(cluster)'인 배근신경절(DRG; dorsal root ganglia)이다. 척추 후근의 일부가 마디 모양으로 팽창된 부위인데 감각신경(1차 구심성 뉴런) 세포체를 갖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절제 수술을 받은 암 환자들의 DRG 세포 샘플이 이번 연구에 활용됐다.
연구팀은, 통증 정도가 각각 다른 남녀 환자의 DRG 세포를 놓고, RNA 염기서열 분석 기법으로 RNA 발현 도를 측정해 그 결과를 분석했다. 여기서 새로운 진통제 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는 다수의 '생화학적 경로(biochemical pathways)'를 찾아냈다.
이처럼 생존해 있는 환자로부터 DRG 세포를 채취해, 만성 통증이 세포의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실험한 건 처음이라고 연구팀은 말한다.
연구팀이 특히 주목한 부분은,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뉴런이 계속 흥분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이다. 이럴 때 환자는 자극이 없어도 통증을 계속 느낀다.
보고서의 수석저자인 텍사스대의 테드 프라이스 신경과학 교수는 "외부 자극이 없는 뉴런의 흥분 상태를 자발 전위(spontaneous activity)라고 한다"면서 "인체 안에서 통증이 옮겨 다니는 생물물리학적 통로(biophysical conduits)를 발견함으로써 연구에 큰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100개 가까운 유전자를 대상으로 생물표지나 약제 표적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분석해 가장 유망한 10개를 추려냈다. 이 10개의 유전자는 모두 면역 신호나 반응과 관련된 신경망에 속한 것들인데, 남녀 성별에 따라 발현 도가 달랐다.
이 대학 연구원으로 제1저자를 맡은 프라딥타 레이 박사는 "신경세포와 면역세포에는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가 역사처럼 남아 있다"면서 "만약 면역세포가 신경세포와 똑같은 방법으로 변화한다면 의사들은 (세포의 역사를 보고) 환자 개인별로 어떤 약이 최선인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라이스 교수의 오랜 연구 주제이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에서 만성 통증의 작용이 눈에 띄게 달랐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프라이스 교수는 "통증 정도보다 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DRG 세포에서 활성화된 유전자들의 시그너처(signature: 독특한 발현 패턴을 공유하는 유전자 군)가 더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발표한 논문들의 파급력을 볼 때 10년 후면 이번 연구결과가 (실제 약물로) 크게 주목받을 것 같다"면서 "어떻게 만성 통증이 남성과 여성에서 다르게 다뤄져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를 담은 보고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신경학 저널 '브레인(Brain)'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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