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학교 다룬 다큐멘터리 '아이들의 학교', 일본서 반향
재일교포 감독 메가폰…참의원회관서 상영회·日 전국서 상영 확대
한국서도 상영 계획…한국어·영어 자막 제작 위해 크라우드 펀딩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이건 관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입니다. 국가가 선두에 서서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겁니다."
19일 일본 참의원회관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들의 학교(アイたちの學校)'의 상영회.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의 이런 발언이 영화에 등장하자 관람객들 사이에서 공감의 탄성이 한숨과 함께 쏟아졌다.
마에카와 전 차관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교육무상화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에서 나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학스캔들을 폭로한 인물이기도 한 그는 교육무상화 제도의 입안자로, 애초에는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 넣었다가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의 학교'는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조선학교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간단히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계 학교로 불리지만, 조선학교는 해방 이후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줄곧 일본 땅에서 민족 교육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 내 한국학교는 동경(도쿄)한국학교, 교토국제학교, 오사카 금강학교, 건국한국학교 등 4곳 뿐이지만, 조선학교는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모두 68곳이나 된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국적은 '조선' 국적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다양하다.
영화는 조선학교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차별과 탄압을 소개하는 한편 다른 학교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학교에 대한 탄압의 역사는 1948년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지시라며 일본 지자체들이 조선학교폐쇄령을 내린 데서 시작했다.
이후 일본 정부의 탄압을 뚫고 전국에서 조선학교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탄압은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를 교육무상화 제도의 대상에서 제외했고, 지자체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있다.
이날 상영회에 모인 50여명의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 등 관객들은 조선학교의 '잔혹사'를 보며 눈물을 훔쳤고, 밝은 표정으로 조선학교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상영회에 참석한 나타니야 마사요시(那谷屋正義) 참의원 의원(입헌민주당 소속)은 "문부과학성이 교육을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있다"며 "정치 문제를 교육에 가져와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일교포 고찬유(71) 감독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1월 처음 공개된 뒤 일본 전국에서 상영 문의가 잇따르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당시 당초 오사카(大阪)에서 1주일간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관객들이 몰리며 상영 기간이 5주로 늘어났고, 나고야(名古屋), 히로시마(廣島), 고베(神戶), 도치기(회<又대신 万이 들어간 板>木), 군마(群馬) 등으로 상영 장소가 확대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에서도 오는 5월 말 열리는 부산평화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정식 개봉될 전망이다.
제작사측은 한국어와 영어 자막의 제작 비용을 온라인에서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모으고 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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