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일몰제] ② 토지주들의 반란…"더는 못참아" 아우성
최소 30여년에서 최장 80여년간 재산권 행사 못해 폭발 직전
일부 지주, 자기 땅에 철조망 두르고 운동시설 등 철거 요구
(전국종합=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50년 넘게 자기 땅을 자기 맘대로 처분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대구 도심 노른자위에 자리 잡은 범어공원 안에 땅을 가진 A씨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가 공원지구로 55년째 묶이는 바람에 몇 번이나 땅을 팔려고 시도해봤으나 헛물만 켰다.
공원으로 묶인 땅을 사려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지주 B씨는 최근에 자신의 땅에 있는 산책로는 물론이고 운동기구, 벤치 등을 철거해 달라고 시 당국에 요구서를 보냈다. 개인 땅에 행정당국이 주인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주민 편의시설을 설치했다는 게 이유다.
B씨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무원 고발, 민사소송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처럼 대구 범어공원(113만㎡)만해도 땅 주인 수백 명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공원일몰제를 앞두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1965년 초 공원을 지을 목적으로 도시계획이 수립됐다.
공원 부지에서 국·공유지만 37% 가량이고 나머지는 개인 땅이다.
내년 7월 공원일몰제 시행 때까지 대구시가 공원 부지를 사들이지 않으면 땅 주인들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된다.
대구시는 그러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체 공원 부지의 7% 정도만 사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지주들은 "땅을 쓸모없는 맹지로 만들기 위해 대구시가 일부러 공원 진입로, 입구 위주로 땅을 사들이려 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자기 땅에 철조망을 치는 등 일부 토지주는 물리적 행사에 나섰다.
지주 C씨는 "수십 년 동안 개인 땅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내어 줬다"며 "언제까지 우리만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느냐"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전북 전주시 도심 속에 자리 잡은 건지산 주변 도시공원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건지산과 덕진공원, 전북대 일원 357만㎡가 도시공원지역으로 지정된 건 일제 강점기인 1938년이다.
공원지역 중 60여만㎡에 이르는 사유지 주인들은 80년 넘게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사유지 상당 면적은 도심과 인접한 데다 지대가 낮고 평탄해 공원구역에서 해제되면 곧바로 개발이 가능하다.
실제 10여년 전 이 일대에 아파트 건립 바람이 불면서 공원구역 밖이 3.3㎡당 100만원 이상을 호가해 공원구역 내 지주들 가슴을 쓰리게 했다.
공원구역 내 사유지 절반 가까운 25만여㎡를 소유한 강씨 문중의 한 관계자는 "3.3㎡당 1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땅이 공원구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완전히 외면받았다"며 "지금도 전혀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제값도 받을 수 없으니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나라에서 마음대로 공원구역이라고 선을 긋고서 우리 재산권을 묶어버렸다"며 "지금까지 한 푼도 보상 안 해준 것은 그만두고 이제라도 꼭 필요한 땅이 아니면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전북에는 이처럼 도시계획을 세운 뒤 10년 넘게 미집행된 시설이 4천400여곳, 52k㎡가 넘는다.
이 가운데 약 40%가 도시공원 시설이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 열린 공원일몰제 대비방안과 민간개발공원 시민설명회에는 지주와 공원 주변 주민 등 300여명이 몰렸다.
지주들은 그동안 제한됐던 재산권 행사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으나 종전대로 공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근 주민들이 많아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진주시도 가좌공원(82만3천㎡)과 장재공원(23만1천㎡) 등 두 곳을 민간 특례사업 대상자로 선정해 개발 계획 등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두 공원은 30년가량 공원구역으로 묶인 곳이다.
지주 P씨는 "장기간 공원지구로 묶여 있는 바람에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못했다. 이번 기회에 자치단체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해주고 토지주는 자신의 구상에 맞게 부지를 개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전 월평공원 지주들은 지난 1월 26일부터 공원 내 등산로 입구 3곳을 폐쇄했다.
이들은 "공원으로 묶인 54년 동안 재산권 행사에 제한받았다"며 "시는 그동안 받지 못한 토지 사용료를 내놓으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주들은 "민간특례 사업이 추진될 때까지 시민들의 사유지 출입을 통제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상태다.
월평공원은 대전의 대표적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이다.
지주 D씨는 "민간사업이라도 하게 해 줘야 하는데 최근 공론화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더는 참을 수 없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여 향후 갈등과 후유증을 예고했다.
(최병길 백도인 정윤덕 김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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