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5·18…'우리 모두의 5·18'로 가는 길은?
5·18기념재단, '너와 나의 5·18'로 진실과 과제 살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철저히 단절·고립됐다. 모든 교통은 끊겼고, 정규 방송도 중단됐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공포가 온 도시를 휩쓸었다. 무자비한 살상은 끔찍한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신군부 세력이 주도한 국가 폭력에 목숨 걸고 맞서서 투쟁해야 했던 시민들! 하지만 열흘간의 대항쟁은 결국 참담한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비규환 속에 수많은 시민이 군홧발에 짓밟혀 죽거나 다쳤다. 요란한 총성과 피맺힌 절규가 사라지자 도시는 평상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자비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죽어 사라진 자들은 망각과 왜곡의 늪에 속절없이 파묻혔다. 뼈저린 트라우마는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사필귀정이다. 거짓과 야만은 진실을 잠시 숨길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감출 순 없다. 가리고 묻히고 뒤틀렸던 사실과 진실이 하나둘 그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다독거리고 있다. 그 상처는 1987년 6월항쟁을 낳아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강압 정치에서 법치 사회로 가는 길을 여는 토대가 됐다. 그리고 이듬해 '광주청문회'가 개최되며 닫힌 5·18 진실의 문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5·18기념재단이 펴낸 책 '너와 나의 5·18'은 5·18의 진실을 심도 있게 파헤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더불어 당시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바쳐 부당한 국가 폭력과 싸우며 던진 질문이 과연 무엇이었고,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총체적으로 말해준다. 이와 함께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에서 보듯 국가 폭력이 계속되는 한 5·18도 결코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고 규정한다.
내년으로 5·18이 일어난 지 어언 40년째. 그러나 일부 세력에 의한 진실 왜곡과 폄훼 논란은 가시지 않는다. 예컨대, 지난 11일 광주지방법원에 출두한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계엄군의 헬기 사격에 대한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5·18기념재단과 5월 단체들은 성명을 내어 "이번 재판은 진실을 밝히는 첫걸음이자 전씨를 비롯한 책임자들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묻는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준엄한 법의 심판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고 역설했다.
헬기 사격과 관련해서는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해 2월 초 "5·18민주화운동 당시 육군은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준비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출간된 '너와 나의 5·18'은 일반인과 대학생을 위한 교양서 성격을 띤다. 필자는 김정인 춘천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김정한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은우근 광주대 교수, 정문영 전남대 5·18연구소 전임연구원, 한순미 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5명이다.
이들 필자는 광주 항쟁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들이 무엇이고,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심도 있게 살핀다. 나아가 5·18이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그 정신이 인권과 평화의 인류 보편적 가치로 승화·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왜 가시지 않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책은 모두 4부 13장으로 구성됐다. 제1부 '5·18, 배경과 진행'에서는 광주 항쟁 이전의 역사와 과정, 5·18의 전개 과정, 5·18 이후 6월항쟁까지의 과정을 서술했고, 2부 '5·18 이후의 5·18'에서는 광주 항쟁이 남긴 상처와 그 치유의 문제, 진실의 왜곡과 조작, 항쟁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어떻게 이룰지 다뤘다.
이어 3부 '해석과 실천'은 5·18이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그리고 프랑스·러시아·중국 등의 변혁 운동을 광주 항쟁과 비교했으며, 마지막 4부 '기억, 증언, 예술'은 5·18이 문화예술로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살폈다.
예를 들어 제2부 5장의 '5·18, 진실과 거짓말'은 군사반란 세력과 극우 세력이 어떻게 항쟁을 왜곡했는지 그 양상과 배경 그리고 대처법을 밝힌다. 저자는 "군사반란 세력과 극우 세력, 언론은 5·18의 진실을 왜곡해 지역주의와 반공주의의 프레임에 5·18을 가둬버렸다"며 "이제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그 진실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다"면서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주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저자들은 서문을 통해 "민중이 생명을 바쳐 쓴 서사시인 5·18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민중이 겪은 역사적 고통과 좌절, 그리고 극복에 대한 기록"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가의 모습이 5월 민중이 목숨을 바쳐 이룩한 생명공동체의 빛나는 성취와 일치하지 않는 한, 5·18은 계속되는 현재다. 그 진실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5·18이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임을 역설적으로 입증한다"고 말했다.
5·18은 '폭도'에 의한 '부당한 폭동'이 아니라 '시민'에 의한 '정의로운 항쟁'이며 '그들만'의 투쟁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승리로 승화시켰을 때 비로소 완결된다는 것이다.
오월의봄 펴냄. 496쪽. 2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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