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 할머니들 위해 쓴 문병란 시 발굴

입력 2019-03-18 11:40
수정 2019-03-19 10:02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위해 쓴 문병란 시 발굴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직녀에게'로 널리 알려진 시인 고(故) 문병란이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쓴 시가 새로 공개됐다.

18일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에 따르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최근 창립 10주년 정기총회의 자료집에 문병란의 미공개 시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실었다.

문병란은 2000년 근로정신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 한국어판 간행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에 직접 참석해 이 시를 낭송했다.

부제는 '근로정신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 한국어판 간행에 부치는 기념시'로, 지난해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측이 이금주 전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의 자료를 정리하던 중에 발견했다.

총 9연, 70행으로 2000년 3월 26일 창작한 것으로 돼 있다.

'통곡의 바다/ 회한의 바다/ 피와 눈물의 바다/ 오늘 그 바다 위로/ 사랑과 사죄의 참회를 싣고 오는/ 인간 평화 사절단/ 우치카와 변호사/ 다카하시 선생/ 원한을 넘어/ 오늘 마침내 우리와 손을 잡는다 // 사람은 천부의 그 인권으로/ 오로지 평등하고 아름다운 것/ 국경을 넘어 이념을 넘어/서로 껴안을 뿐/ 뜨거운 피 벽을 무느고/ 원수의 가슴에도/ 얼음 녹 듯 인정은 꽃피어난다. // (…) // 진정한 배상은/ 물질도 돈도 / 그 허울 좋은 말도 아니다 / 진정한 배상은 / 오직 뉘우침 / 거듭나는 양심의 나눔 / 한 조각 빵도 둘로 나누고 / 사과 한 알도 두 조각 내 듯 / 마음과 마음을 서로 주고받는 것 // 가해자여, 역사 앞에 무릎 꿇어 / 우리의 눈물 받으라 / 짓밟힌 양심을 펴 / 그 눈물 적셔 / 더렵혀진 살점 / 역사 속에 엎질러진 죄악 / 눈물로 씻으라 / 참회로 공덕 닦으라'('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부분)

이 시를 분석한 김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와 한일시민(민중) 연대를 강조하며 일본에 '진정한 배상은 오직 뉘우침'이라고 지적한 문 시인의 언설에서 국경을 초월한 평화정신과 민중의식이 읽힌다"고 밝혔다.

또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이 결성된 것이 2009년인데, 문병란 시인은 이미 2000년에 이 시를 썼다"며 "근로정신대 문학의 효시로 볼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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