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휘둘려온 카드수수료…정부 가격개입 논란 지속

입력 2019-03-17 07:01
정치에 휘둘려온 카드수수료…정부 가격개입 논란 지속

2012년 여전법 개정이 시발점…일각선 '현금·카드 차등화' 주장

대형가맹점 횡포, 카드사 과당경쟁도 한몫…"결국 소비자가격에 전가"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구정모 홍정규 기자 = 2012년 2월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 출석한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이 입을 뗐다.

김 위원장은 "모든 가맹점이 수용할 수 있는 수수료율을 금융위가 산출하라는 법은 사실상 집행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금융위가 3년마다 가맹점 카드수수료율을 정하도록 한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사흘 뒤에도 "공공요금이 아닌 민간기업의 가격을 정부가 결정·강제하는 법률은 다른 영역에서 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좋지 않은 입법례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여전법 개정안은 정부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무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그해 4월에 총선이 치러졌다. 의원들은 앞다퉈 자신의 지역구에 현수막을 걸었다. 대부분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해 수수료율을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금융위가 마구잡이로 수수료율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맹점의 규모와 결제 행태, 카드사의 마케팅 등으로 '적격비용'을 따져 합리적 수준에서 정하되, 영세 가맹점은 보호 차원에서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한다.

문제는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수수료율이 늘 영세 가맹점에 대해선 '시혜적' 성격으로 낮춰지고, 대형 가맹점은 올리면서 반발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매출액이 적다는 이유로, 소액결제가 많다는 이유로, 수수료율을 낮춘 '우대 수수료율'이 적용되고, 적용 대상이 갈수록 늘었다. 수수료율은 3년 단위 정기적 개편 때뿐 아니라 수시로 바뀌었다.



가장 가까운 예는 지난해 11월 "카드수수료 체계 개편과 관련해 경영 애로를 겪는 가맹점에 대한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수수료 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였다.

문 대통령의 지시 나흘 뒤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는 연매출 5억∼10억원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2.05%에서 1.40%로 낮추고 체크카드 수수료율을 1.56%에서 1.10%로 낮추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이제 273만개 가맹점 중 262만6천개가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됐다. 카드업계 고위 관계자는 17일 "이쯤 되면 우대 수수료율이 아니라 사실상 일반 수수료율"이라고 꼬집었다.

금융위는 전체 가맹점 99%의 수수료율을 깎아주는 대신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은 올리도록 했다.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 즉 포인트 적립이나 각종 할인혜택이 대형가맹점에 집중되니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당장 첫걸음부터 꼬였다. 현대자동차[005380]가 수수료율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결제 중단까지 불사하겠다고 통보, 결국 카드사들은 애초 올리려던 수수료율 인상폭(0.1%포인트)의 절반(0.05%포인트)으로 물러섰다.

카드사들은 이번주부터 유통·이동통신·항공업종 등의 대형가맹점들과 수수료율 인상 협상에 들어가지만, 인상이 뜻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수수료 인상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결제 중단 직전까지 몰리는 배경으로 대형가맹점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꼽기도 하지만, 정부가 시장가격에 개입하도록 길을 열어둔 여전법 개정 때부터 예고된 일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합법적으로 가격에 개입할 수 있게 되니 정치권과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2012년 여전법 개정 때 현금과 카드결제의 가격 차등화, 즉 '이중가격제' 허용 여부도 논의됐지만, 세원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백지화됐다.

금융권 일각에선 현금영수증 발행이 자리를 잡은 만큼, 수수료 부담이 없는 현금결제에 차등 가격을 허용하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고도 수수료율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다른 한편에선 카드사들이 덩치를 키우려고 시장점유율 경쟁을 벌이면서 사태 악화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동차 구입 카드결제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딜러가 현금결제 대신 특정카드 발급·결제를 유도하고, 카드사는 카드수수료 수입을 딜러와 고객에게 '캐시백'으로 나눠주는 형태의 마케팅 때문에 불필요한 카드결제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현대카드가 현대차 구입에 'M포인트'를 수십만점씩 쌓아주면서 점유율을 늘리자 삼성카드[029780]가 딜러를 통한 캐시백 거래를 시작했고, 다른 카드사들도 이런 마케팅 경쟁을 벌인 게 금융감독원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별 소비자 입장에선 카드결제로 캐시백을 받으면 기분이 좋겠지만, 현금결제 할인이나 각종 옵션이 제한된다"며 "'공짜 점심'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올리면, 대형가맹점에서 판매되는 상품·서비스의 소비자가격에 어떻게든 녹아들게 돼 있다"며 "시장실패를 바로잡으려고 개정한 여전법이 정책실패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zhe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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