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새 연호, 중국 古典 배제하나
선정그룹에 국문학자·일본사 전문가 참여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오는 4월 1일 발표될 일본의 새 연호(年號)가 이례적으로 중국 고전(古典) 의존도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호 선정을 관장하는 일본 정부(내각관방) 관계자는 13일 국회 답변에서 선정 절차에는 높은 식견을 가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며 국문학자와 일본사학자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문학자는 일본어 전문가이고, 일본사학자는 일본 고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정통한 학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전의 연호 선정 과정이 한문학자와 동양사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과 비교해 달라진 부분이다.
이 때문에 올 5월 1일 시작되는 나루히토(德仁·59) 일왕 체제의 새 연호는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역사서에 등장하는 글자를 발췌해 제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일왕의 통치기를 세분하는 명칭으로 활용되는 연호는 주역 등 중국의 고전에서 주로 발췌해 한문 두 글자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선 크게 6가지를 고려한다.
우선 쓰거나 읽기에 쉬워야 한다. 또 과거에 사용된 적이 없어야 하고, 옛 연호를 다시 쓸 수 없다.
이전 덴노의 시호(諡號, 사후에 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도 제외 대상이다.
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부터는 영문자로 표기될 때의 머리글자가 어떻게 되는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전의 메이지(M), 다이세이(T), 쇼와(S)와 구분하기 위해 H가 영문 머리글자로 표기되는 헤이세이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루히토 새 일왕의 연호로는 M, T, S나 H가 머리글자로 표기될 수 없는 한자가 선정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본칙(本則) 기준으로 달랑 31자로 이뤄져 일본 법률 가운데 2번째로 짧은 원호법에 따라 새 연호 제정 작업은 내각을 이끄는 아베 총리가 전반적으로 관장한다.
일본 언론은 연호 선정 전문가 그룹에 새롭게 국문학자 등이 참여하기로 함에 따라 새 연호가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에서 선택될지 주목된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아베 신조 총리는 국회 답변을 통해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며 연호가 일본국민 생활에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 일본의 연호는 = 일본어로 겐고(げんごう, 元號)라 하는 연호는 임금이 즉위하는 해에 붙이는 이름이다.
서기 645년 제36대 고토쿠(孝德) 일왕(덴노)의 다이카 개신(改新) 때 중국에서 이 제도를 처음 들여온 일본은 연호가 시작되는 원년(元年)을 기준으로 삼은 햇수를 아직도 공문서 등에서 광범위하게 쓰고 있다.
산케이 등 일부 우익성향의 신문 매체는 서력보다 연호 표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한 덴노의 재위 기간에 천재지변이나 국가적으로 경축할 일이 있을 때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는 차원에서 연호를 바꾸기도 했다.
실제로 제121대 고메이(孝明) 시기에는 고카(弘化), 가에이(嘉永), 안세이(安政), 만엔(萬延), 분큐(文久), 겐지(元治), 게이오(慶應) 등 7개의 연호가 사용됐다.
고메이 덴노가 21년간 재위했으니 평균 3년에 한 번씩 새 연호를 도입한 셈이다.
그러다가 일본의 근대개혁을 이룬 제122대 메이지(明治) 때부터 '1대(代)의 연호를 하나로 한다'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원칙이 정착됐다. 이를 반영한 원호법(げんごうほう, 元號法)은 1979년부터 시행됐다.
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는 일본 역사에서 247번째 연호다.
일본 정부는 나루히토 새 덴노의 연호를 즉위 한 달 전인 4월 1일 아베 총리 주재의 각료회의에서 확정해 공표할 예정이다.
새 연호는 오는 5월 1일 0시를 기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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