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너도나도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이야기"

입력 2019-03-13 15:37
백기완 "너도나도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이야기"

삶과 철학, 민중사상 집약한 소설 '버선발 이야기'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이 썩어 문드러진 사회를 뒤집어엎는 거, 그 '한바탕'을 버선발이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하자는 거야."

'거리의 백발 투사'로 불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그의 한평생이 집약된 소설 '버선발 이야기: 땀, 눈물, 희망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바탕'(오마이북)을 출간했다.

'맨발'이라는 뜻의 '버선발'이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

백 소장은 그를 통해 자신의 삶과 철학, 민중 예술과 사상의 실체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버선발은 땅 한평이 없어 바위 위에 지은 집에 엄마와 둘이 산다.

머슴의 자식은 머슴이라는 법에 따라 주인집에서 잡으러 온 한겨울 어느 날, 그는 엄마가 둘러준 저고리를 걸친 채 머나먼 길을 떠난다.

발을 굴러 '한바탕'하는 힘을 얻지만, 늘 남을 위해서만 힘을 쓰던 버선발은 역경 속에서 좌절하면서도 끝내 민중으로부터 희망을 보게 된다.

백 소장은 13일 서울 대학로 학림커피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소설을 "한바탕"이라고 칭했다.

그가 말하는 민중의 한바탕(서사)은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썩은 문명을 청산하고, 거짓을 깨고, 빼앗긴 자유와 희망을 되찾고, 착한 벗나래(세상)를 만드는 것이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그게 바로 '노나메기'지. 이 썩어 문드러진 사회를 뒤집어엎는 거. 그 한바탕을 버선발이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하자는 거야."

소설 속 버선발은 오랜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모두를 보듬으며 새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는 점에서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민중 해방의 상징으로 우뚝 선 백 소장과 많이 닮았다.

버선발의 발 구르는 힘은 자신의 조상과 부모가 머슴인 그 모든 머슴의 분 뻗친 한을 풀고자 하는 피눈물 나는 대들(저항)의 열매다.

그는 그 힘을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다.

한바탕해 바다를 땅으로 만들고도 자신은 한 뼘도 가지지 않고 모두 나눠준다.

하지만 결국 힘세고 욕심 많은 이들만 더 잘살게 되고, 없는 사람은 여전히 빈손인 현실을 보면서 자책해 죽음까지 생각한다.

"버선발이 절망에 빠졌을 때 만난 할머니는 사람이 사는데 가장 사갈(죄악)이 '내 거'라고 가르쳐줘. 끊임없이 내 거를 찾아 다른 사람의 피눈물까지 내 거로 만드는 그 '내 거'. 그러한 거짓 내 거 말고 참된 내 거를 깨우치는 '다슬'을 알아야 해. 샘은 메마른 땅을 기름지게 적셔주면서도 절대 둘레의 땅을 내 거라고 하지 않아. 그게 다슬이지. 다슬을 깨우친 후에는 이를 가르침으로 삼아야 해. 다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 사자는 거, 그게 바로 노나메기야."

온갖 역경을 겪고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신을 당하면서도 버선발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들이대 빼앗긴 하제(희망·내일)을 찾으러 가'는 한 무리의 니나(민중)를 보고 '발길이 사뭇 새빛처럼 가벼워'진다.

떼로 몰려가던 뜬쇠(예술가), 나간이(장애인), 그리고 이름 없는 니나들이 단 한 사람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소리 없는 울음을 펑펑 울며 따라간다.

그 모습은 마치 평생 민중의 뒤에서 버선발로 걸어온 백 소장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버선발은 영웅이 아니다. 버선발은 오랜 길거리 싸움의 상처인 지팡이를 짚으며 지금도 힘겹게 한 시대의 고개를 넘고 있는 백기완이고 우리 민중이다.'('발문' 중에서)

"나는 이 버선발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니나를 알았다. 이어서 니나의 새름(정서)과 갈마(역사), 그리고 그것을 이끈 싸움과 든메(사상)와 하제를 깨우치면서 내 잔뼈가 굵어 왔음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글쓴이의 한마디' 중에서)

이번 소설에는 한자어와 외래어가 한마디도 없다.

어쩌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 말이 가득하지만, 특별한 힘과 읽는 맛이 있어 더 날카롭고 선연하게 온몸으로 파고든다.

'버선발 이야기'는 지난해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백 소장이 큰 수술을 받으며 올해로 미뤄졌다.

백 소장은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도 "버선발 이야기를 꼭 완결지어야 한다"며 강한 의지와 애정을 보였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 백 소장의 지인들은 사회 각계 인사들을 모아 이번 소설 읽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음달 말까지 독후감 대회를 진행하고, 독자들과의 만남 및 출판기념회도 마련할 예정이다.

통일문제연구소가 지난해 50주년을 맞은 만큼 다음달 중으로 기념행사도 계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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