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아왔다"…김정남 살해혐의 여성, 고향서 뜨거운 환대(종합)

입력 2019-03-13 15:54
수정 2019-03-13 17:13
"잘 돌아왔다"…김정남 살해혐의 여성, 고향서 뜨거운 환대(종합)

시티 아이샤 "현실 같지 않다…언론과 떨어져 쉬고 싶다"

사건 경위 등은 함구…"흐엉은 내 친구, 빨리 석방되길 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2년여 만에 석방된 인도네시아인 여성이 축제를 방불케 하는 환대 속에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13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시티 아이샤(27)는 전날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면담한 뒤 가족과 함께 반텐 주 세랑 군 란짜수무르 지역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 주민들은 타국의 정치 다툼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이웃이 무사히 귀환한 것을 반기기 위해 늦은 시간임에도 거리로 몰려나와 일제히 환호했다.

일부는 악기를 연주했고, 주변의 이슬람 사원들은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를 울려댔다.

시티는 경찰관의 도움을 받고서야 간신히 인파를 뚫고 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귀가 직후 탈진해 쓰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 의회 당국자는 "그는 매우 지쳐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실신했다.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그가 쉴 수 있도록 해주자"고 말했다.

이웃들은 전날 시티가 전격적으로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면서 그가 집에 도착하기를 학수고대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시골 지역 출신의 젊은 여성들은 대도시나 해외로 일을 하러 나갔다가 성적 착취나 학대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다가 고용주를 살해하게 된 인도네시아인 가사노동자가 참수형을 당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의 스파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던 시티도 리얼리티 TV를 찍는 것이라는 북한인 남성들의 거짓말에 속아 김정남 암살 사건에 휘말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까닭에 인도네시아인 대다수는 시티의 석방을 정의가 실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골목을 달리는 어린이들은 "김정남"이란 단어를 연호했다.

시티의 친척인 시티 수다르미는 "우리는 빠르든 늦든 그가 석방될 것을 확신했다. 그는 무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당분간 시티의 집 주변에 경찰관을 배치해 외부의 접근을 통제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위협 등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티가 방해를 받지 않고 충분히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앞서, 시티는 같은 날 오후 인도네시아 외무부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간밤에) 반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의 상황이) 현실 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열렬한 관심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면서 "내 느낌을 표현할 수가 없다. 아마 언론과 거리를 두고 가족과 함께 머물며 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난 평온하기만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조코위 대통령도 그에게 "안정이 될 때까지 집에 머물며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랑 출신으로 2008년 서(西)자카르타 탐보라 지역으로 상경한 시티는 2011년 남편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건너갔으나, 1년 뒤 이혼하고 인도네시아 바탐 섬과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 일해 왔다.

그는 방송용 프로그램 제작자 행세를 하는 북한인들에게 섭외돼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31·여)과 함께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시티는 전날 오전 석방된 이후 수차례 기자회견을 했으나 구체적인 사건 경위 등에 대해선 언급을 삼가고 있다.

그는 BBC 인도네시아와 진행한 별도의 인터뷰에서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몰랐다"면서 그간의 심경을 털어놓을 뿐 자신을 김정남 암살 사건에 휘말리게 한 인물이나 당시의 정황 등을 묻는 말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풀려나지 못한 상태인 흐엉에 대해선 "그는 내 친구"라면서 "가능한 빨리 석방되길 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수감된 뒤에야 서로를 제대로 알게 됐으며, 매주 한 차례 정도 얼굴을 마주치고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고 시티는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지에선 사건 관련 언급을 하지 말아 달라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요청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비록 석방은 됐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 다시 기소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황도 입을 다물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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