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1년] ⑤'중국 강공' 트럼프의 불안한 재선 셈법

입력 2019-03-17 05:33
[무역전쟁 1년] ⑤'중국 강공' 트럼프의 불안한 재선 셈법

'대두 산지' 팜벨트 표심 타격…뉴욕증시 흔들리고 무역적자 확대

"재선행보 저해하지 않는 정치적 합의 가능성"…'中구조개혁' 용두사미 지적도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미국 대선의 첫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아이오와주. '대선 풍향계'인 아이오와의 표심은 지난해 11·6 중간선거에서 미묘하게 엇갈렸다.

아이오와는 지난 2016년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었던 이른바 '팜 벨트'(Farm Belt·중서부 농장지대)의 주요 지역이다.

'트럼프 텃밭' 아이오와의 하원 의석 4석은 민주 3석, 공화 1석으로 나누어졌다. 민주 1석, 공화 3석의 기존 구도가 정반대로 뒤바뀐 것이다.

공화당이 주지사직을 지켜내기는 했지만, 2년 사이 '보수 텃밭' 표심에 미묘한 균열이 감지된 셈.

이러한 지형 변화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로는 미·중 무역전쟁이 꼽힌다. 아이오와는 미국의 대표적인 '대두'(콩) 생산지다.

미국산 대두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 맞서서 대두를 겨냥했다.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줄이고 대신 브라질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했다.

중국이 수입한 미국산 대두는 2017년 3천258만t에서 지난해 1천664만t으로 '반 토막'이 났고, 자연스럽게 아이오와의 대두 수출량은 곤두박질쳤다.

미국에 대응할 반격카드가 마땅치 않은 중국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농산물을, 보다 정확하게는 대선정국의 상징성이 큰 아이오와를 표적 공격한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의 본질인 기술 패권 경쟁과는 거리가 있는 '대두 수출량'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외교수장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자마자 곧장 아이오와로 달려가 '농심(農心) 달래기'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셈법'에 부정적인 또 다른 루트는 바로 증시의 주가다.

뉴욕의 경제계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주가가 유권자들의 표심에 미치는 영향에 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내에서도 종종 경제방송을 틀어놓고 다우지수 흐름을 '분 단위'로 지켜보고 있다고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한 바 있다.

그렇지만 뉴욕 주가는 미·중 무역갈등과 맞물려 불안정한 흐름을 보여왔고, 이는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주가 급락으로, 미국 가계의 자산은 10년 만의 최대폭 감소세를 보였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미 가계 부문 순 자산은 작년 4분기 104조3천억 달러 감소한 가운데 금융자산 감소분이 85조 달러로 감소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의 지난해 상품·서비스수지 적자는 약 6천200억 달러(약 701조 원)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7천억 달러) 이후 10년 만의 최대를 기록했다.

서비스를 제외한 상품수지 적자는 8천913억 달러(1천조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중국과의 상품수지 적자는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4천억 달러를 돌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줄이겠다고 공언한 대중 무역적자가 되레 증가하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해 미국 경제가 연간 3%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수입 물량이 급증한 결과다. 달러화 강세도 적자 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근본적으로는 탄탄한 미국 경제를 보여주는 지표이지만 '폭탄 관세'를 앞세워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고 재선 행보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정치적 포석에는 어긋나는 구도가 연출된 셈이다.



이런 부정적인 신호들은,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화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를 저해하지 않는 적절한 선에서 미·중 무역협상의 '성과물'이 제시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서서히 재선 행보에 시동을 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팜 벨트의 표심을 다독거리고 무역 불균형을 다소간 해소하면서 동시에 뉴욕증시에도 우호적인 절충안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미·중 무역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부각되면서 뉴욕증시는 새해 들어 1~2월 예상 밖 강세를 이어갔다.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미국에 1천만t의 대두를 추가 구매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투자심리에 훈풍이 불고 있는 것도 이러한 기류를 반영한다.

대외적으로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통상대표부(USTR) 대표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으로 대표되는 '강경 매파'의 목소리가 부각되고 있지만, 결국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비롯한 협상파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과도 맥이 닿아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중국 경제의 구조개혁을 비롯해 애초 미국이 설정한 눈높이에는 크게 못 미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의 '기술 탈취' 중단, 기술굴기(堀起)를 상징하는 '중국제조 2025' 개선 등에 대한 구속력 있는 합의는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관세를 철회하는 무역 합의에 다가갔으나 미국이 애초에 설정한 대로 중국 경제의 실질적 변화를 쟁취하는 데는 거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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