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나비효과?…주키니·애호박 가격폭락에 농민 울상

입력 2019-03-13 06:03
태풍의 나비효과?…주키니·애호박 가격폭락에 농민 울상

풋고추→호박 전환후 '따뜻한 겨울'에 생산량 급증…산지서 대량 폐기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최근 찌개·전을 비롯한 각종 요리에 들어가는 주키니 호박과 애호박 가격이 크게 떨어져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3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등에 따르면 주키니 호박의 지난달 평균 도매가격(이하 상품 10㎏ 기준)은 9천572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9천359원과 올해 1월 8천462원에 비하면 소폭 오른 수준이지만, 1년 전인 작년 2월의 2만3천880원과 비교하면 약 60%나 폭락한 가격이다.

평년 2월 가격인 1만9천545원과 견주자면 반값에도 못 미친다.

농업관측본부는 주키니 호박의 생산량이 갑자기 늘어난 것을 원인으로 봤다.

지난해 10월 태풍 '콩레이'에 피해를 본 경남 진주 지역 풋고추 농가가 주키니 호박으로 작목을 바꾸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농업관측본부는 "올해 1∼2월 서울 가락시장에 들어온 주키니 호박의 양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나 늘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5∼7일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 '콩레이'는 사망자 2명과 주택 1천147동 파손을 비롯해 89개 시·군·구에서 540억원 규모의 피해를 낸 바 있다.

태풍 피해가 해를 넘기면서 마치 '나비효과'처럼 주키니 호박 가격폭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주키니 호박값은 비슷한 용도로 쓰이지만 크기만 조금 작은 애호박의 가격까지 끌어내렸다.

지난달 애호박(상품 20개 기준) 가락시장 평균 도매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낮은 1만8천800원 수준이었다. 도매시장 반입량은 지난해와 비슷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키니 호박값 폭락의 '불똥'이 애호박으로 튄 것으로 볼 수 있다.

농업관측본부는 "주키니 호박이 생산량 증가로 가격이 내려가면서 애호박까지 가격이 동반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호박을 대량 폐기하는 농가들이 등장한 가운데 유통업계는 호박 소비를 촉진하는 운동을 펼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키니 호박 생산 농가와 진주 금곡농협은 올해 1∼2월 주키니 호박 220t을 산지에서 폐기했다.

우체국쇼핑은 "칼로리가 낮고 다양한 영양소를 가진 주키니 호박을 먹고 농민에게 웃음을 되찾아 달라"고 홈페이지에서 판촉 행사를 벌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가격 전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농업관측본부는 "주키니 호박 생산이 종료되지 않아 앞으로도 생산 과잉 가능성이 있다"며 "산지 상황에 대한 면밀한 주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호박 역시 다른 작목에서 전환한 농가가 많아 재배 면적이 늘어났고, 따뜻한 날씨 덕분에 생육도 좋아 생산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농업관측본부는 "이달 애호박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10% 많을 것으로 전망되며, 다음 달 출하 면적도 4% 증가할 것"이라며 이달 도매가격을 지난해 2만8천700원의 절반 수준인 1만2천∼1만4천원으로 제시했다.

농업관측본부는 "등급이 낮은 상품은 출하를 억제하고, 출하 시기를 분산해 가격을 안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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