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에 빠진 경사노위 정상화 '고심'…근본문제는 민주노총 불참
의사결정 구조 바꿔도 노동계 분열 구조에선 원활한 운영 어려워
내달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 논의 결과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노·사·정 대표가 참석하는 본위원회를 두 번이나 열고도 의결을 못한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운영 정상화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12일 "문성현 위원장이 어제 밝힌 대로 조만간 4차 본위원회를 개최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잡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사노위는 지난 7일과 11일 2차, 3차 본위원회를 잇달아 열었지만, 근로자위원인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의 불참으로 의결 정족수를 못 채워 파행을 겪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상 최고 의결 기구인 본위원회는 노·사·정 대표 18명으로 구성되는데 재적 위원 과반수가 참석하고 노·사·정 각각 위원의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 의결이 가능하다.
현재 근로자위원은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4명인데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이 빠지면 의결 정족수 미달이다.
경사노위가 개최할 4차 본위원회에도 이들이 참석할 가능성은 작다.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개선 합의를 본위원회에서 의결할 방침인데 이들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는 소수 위원의 '보이콧'으로 본위원회가 마비되는 사태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의사결정 구조 개선을 추진 중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본위원회 의결을 위해 노·사·정 각각 위원의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는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 때부터 있었던 규정으로, 당시 근로자위원 2명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대표 각각 1명으로 구성된 구조가 반영됐다.
양대 노총의 어느 한쪽이 합의에 반대해 불참하더라도 나머지 한쪽만 참석하면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한 장치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청년·여성·비정규직을 포함해 근로자위원이 5명으로 늘어난 경사노위의 구조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조직 규모 면에서 양대 노총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수 단체 대표 3명이 집단행동을 하면 본위원회가 공전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해 양대 노총이 참여한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노사정위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의 틀을 짤 때도 이런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사노위 산하 의제별 위원회의 사회적 합의가 본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최종적인 합의로 인정되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법은 이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경사노위는 의제별 위원회인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에서 도출한 탄력근로제 개선 합의가 본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도 유효하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본위원회 의결 없이는 사회적 합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개선 합의 의결이 지연되는 것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국회에 논의 결과를 제출하기로 했다. 국회는 이를 토대로 법 개정에 나설 예정이지만, 국회에서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수 있다.
그러나 경사노위가 파행을 겪고 있는 근본 원인은 의사결정 구조보다는 노동계의 한 축을 이루는 민주노총의 불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지난 1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찬반 격론 끝에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고 경사노위에는 한국노총만 남아 노동계가 양분된 상황이다.
탄력근로제 개선 문제에서도 한국노총은 노동자 건강권 침해와 임금 감소 방지 장치를 만드는 데 주력하며 사회적 합의에 참여했지만, 민주노총은 장외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 3명의 경사노위 보이콧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관측이다.
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개선 합의에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탄력근로제 합의 의결에 참여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노총은 조직 규모 면에서는 한국노총에 뒤지지만, 사회 개혁 목표의 선명성과 폭넓은 연대 활동으로 범진보 진영에서 영향력은 더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경사노위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결국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합류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할 경우 민주노총의 비타협적인 태도로 사회적 대화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낮은 수준이더라도 일단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후폭풍은 훨씬 작을 수 있다.
한국과 같이 노사관계가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사회적 대화의 풍토가 척박한 곳일수록 사회적 합의의 수준이 낮더라도 폭넓은 지지를 담보할 수 있는 성과를 하나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이 다음 달 4일 개최할 예정인 임시 대의원대회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번 대의원대회에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뺀 사업계획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대의원의 현장 발의 형식으로 경사노위 참여 안건이 제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반대파들이 대화보다 투쟁할 때라며 경사노위 참여를 무산시켰지만, 최근 총파업에서 제대로 된 투쟁을 보여주지 못해 내부적으로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다음 달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이 다시 상정될 경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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