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순보에서 유튜브까지…"한국은 '미디어사회'"

입력 2019-03-12 10:55
한성순보에서 유튜브까지…"한국은 '미디어사회'"

강준만 교수, 언론 흐름 살핀 '한국 언론사'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국내 지식인 중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처럼 많은 저서를 내놓는 이도 찾기 힘들다. 강 교수는 언론은 물론 역사, 정치, 사회, 문화, 교양, 심리, 인물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저서를 잇달아 집필해왔다.

지난 30년 동안 쓴 책이 무려 300권가량. 올해 들어서도 지난 2월에 수직적 서열화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룬 '바벨탑 공화국'을 280여 쪽 분량으로 펴낸 데 이어 이달에는 개화기부터 문재인 정권까지 한국 언론사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본 '한국 언론사'를 6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발간했다.

대표적 언론학자인 강 교수는 무엇보다 '객관성'에 주안점을 두고 이번 책을 집필했다고 말한다. '객관'과 '공정'에 도달하기란 좀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사회를 짙은 어둠 속에 놔두지 않고 언론 관련 사건의 맥락을 제시해주는 방식'으로 써나감으로써 그에 최대한 근접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성순보로 시작하는 개화기 언론에서부터 유튜브가 대세로 떠오른 오늘날 언론에 이르기까지 136년 동안의 흐름을 냉정하면서도 집요한 시선으로 파헤쳤다. 개화기,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이승만 정권기, 장면 정권기, 박정희 정권기, 전두환 정권기, 노태우 정권기, 김영삼 정권기, 김대중 정권기, 노무현 정권기, 이명박 정권기, 박근혜 정권기, 문재인 정권기 등 정권별 위주로 나눠 그 실상을 차근차근 살펴본 것.

알다시피 근대 언론의 효시는 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박영효가 일본 개화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을 받고 돌아와 유길준과 함께 추진한 '한성순보'였다. 이듬해 10월 31일(음력 10월 1일)에 창간된 한성순보는 일반 독자가 아니라 관리와 귀족계급만을 대상으로 한 순수 한문 신문이었다.

하지만 1884년 12월 갑신정변 영향을 받아 총 41호를 내고 폐간됐다가 그로부터 14개월 만인 1886년 1월 '한성주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우리나라 최초로 신문광고를 싣기도 했던 한성주보는 2년 6개월의 수명을 넘기지 못한 채 1888년 7월 박문국 폐지와 함께 사라진다.

순한글 신문으로 독자를 만난 매체는 1896년 4월 7일 창간된 '독립신문'이었다. 언문일치의 실현, 국민권익의 최우선 등의 창간 정신을 내세우며 순수 한글로 제작된 독립신문은 가로쓰기 제호와 기사 빈칸 띄어쓰기 등 편집에서 진일보했다. 창간 당시의 발행 부수가 300부였으나 1899년 말 폐간 때는 3천 부를 기록할 만큼 대중성을 확보했고, 발행도 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이뤄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11일 광주지방법원 재판 출석을 계기로 한국 언론의 최대 수난기였던 1980년대 상황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전두환 그룹의 '5인방'이 주도한 이른바 'K(king) - 공작'은 언론 구도 자체를 뒤바꾸며 언론인 회유와 협박 등으로 노골적 여론 조작에 나섰다. 이에 따라 국내 언론은 5·18 광주항쟁에 대해 5월 21일 계엄사 발표가 있기 전까지 일절 보도하지 못했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이 강행됐고, '땡전 뉴스'라는 말처럼 언론은 5공 정권의 홍보와 미화를 위해 나서야 했다. 우리 언론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한국을 '미디어 사회'로 규정한 저자는 "개화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카타르시스 제공이었다"고 말한다. 표현·접근·유통 방식의 차이만 있었을 뿐 체제를 선전하거나 체제에 저항하는 건 다를 바 없었으며 수용자의 호응을 얻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도 같았다.

그 그늘도 적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카타르시스의 상례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 교수는 지적한다. 주제와 상황에 따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건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나, 늘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고 그게 관행으로 정착하게 되면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위축된 가운데 정상적 공론장 형성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와 함께 "한국만큼 미디어가 사회 진로와 대중의 일상적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도 드물다"며 우리 언론이 직면한 최대 위기인 '기술결정론의 독재'를 극복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술결정론이란 인터넷과 휴대전화 대중화 이후에 본격 시작돼 미디어의 활동과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새 미디어 기술을 일컫는다. 그는 "'기레기'라는 말로 대변되는, 언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은 이 '기술결정론의 독재' 탓"이라면서 "언론은 대중의 불신과 혐오를 넘어서 신뢰를 회복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물과사상사 펴냄. 648쪽. 2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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