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권의 고전서 찾은 삶의진실…'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김운하 신작 장편소설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자기 은둔의 시간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꾼다.
10여권의 고전을 들고 제주도에 숨어든 청춘의 어느 날, '나'는 완전한 고립 속에서 책 속에 담긴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자신을 스스로 치유한다.
소설가이자 인문학자인 김운하가 '137개의 미로카드' 이후 18년 만에 장편소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월간토마토)를 출간했다.
그가 소설가로서, 인문학자로서 축적한 사유들을 총 집대성한 이번 책에서 여러 고전의 이야기들과 '나'의 현재를 교차한다.
전기, 논문, 인터뷰 글, 단편소설, 철학 담론·에세이 등이 뒤섞인 형식파괴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137개의 미로카드'처럼 이번 소설 또한 '허구이되, 많은 부분 에세이 양식과 실제 경험을 뒤섞어놓은' 흥미로운 형식을 지닌다.
10여년 전 홀연히 제주로 떠난 일을 회상하는 '나'.
'나'는 그 당시 열권의 책, '노자'와 '장자', '우파니샤드', 그리고 호메로스와 그리스 비극 작가들, 스피노자와 카프카를 들고 갔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여러 고전에 녹아든 삶의 진실들과 마주한다.
'나'는 '제주'라는 은둔의 공간에 머물며 인생이란 무엇인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등 철학적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나는 글쓰기가 이끄는 사색을 통해서만 비로소 운명에 대한 직관에 도달했다. 헬라스의 호메로스 시대에 운명은 인간의 바깥에서, 올림푸스 산에 살고 있는 신들에게서 내려오는 것이었다.'(62쪽)
'아득한 회한 속에서, 나는 내가 겪었던 죽음들을 떠올린다. (…) 나는 그때마다 상주가 되어 붉은 흙으로 덮인 무덤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느닷없이 유죄를 선고받고 기소당한 카프카 소설 '소송'의 주인공 K가 되었고, 불가해한 미로를 닮은 삶이라는 법정에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162쪽)
'오이디푸스는, 지성적인 동물인 인간, 특히 지식인들의 자부심과 위험, 한계를 상징하는 하나의 비유다. 나는 지금 두려운 마음으로 진리의 파수꾼임을 자처하는 철학자들, 이념가들, 맹신자들을 떠올린다. 인간이 만든 그 모든 진리들의 역사란 무엇인가? 공포 정치, 전쟁, 억압, 인종 청소, 종교 전쟁, 명예 살인, 고문...'(105쪽)
고독한 '나'의 시간 속으로 잠깐 끼어든 J. 그는 '나'의 고독을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지금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곳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듯한 기분에 마음이 아팠다. 바로 곁에 그녀가 앉아 있지만, 그녀는 내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에 머물고 있고, 때문에 그녀의 마음 깊은 곳까지는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이 나를 아프게 찔러왔다. 마치 홀로 있는 것 같은 고독이 내 마음을 채웠다.'(82쪽)
작가는 실제 10여년 전 제주도에서 1년 가까이 혼자 머무르며 이번 소설을 구상했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내적 방황을 따라 제주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 고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마라도 절벽을 지나 밤의 끝자락 앞에 홀로 선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소설가가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여서, 문학적인 고민도 많았고 작가로서 살아갈 삶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때였죠. 그 모든 문제를 제주도에 머무는 1년 동안 고독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정신적인 혼돈, 방황의 시간을 가졌던 거죠. 물론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고, 그렇기에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글쓰기에 대해 새로운 자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런 내적 방황의 이야기들을 이 소설에 담아내고 싶었어요."(김운하 작가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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