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반도 비핵화 '감독체제' 제안…역할 확대 노려
왕이 "각 측이 동의하는 감독체제", "공동으로 로드맵 작성"
문일현 교수 "中, 감독기구 의장 염두…북미 동의 여부는 별개"
인민일보 이어 두번째로 연합뉴스 질문받아…한반도 문제에 관심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김윤구 특파원 =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역할을 확대하려는 중국이 '비핵화 감독체제'를 제안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은 8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에서 연합뉴스 기자가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 후 중국의 역할과 기대에 관해 묻자 공동으로 만드는 로드맵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면서 "각 측이 동의하는 감독체제 아래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 조치가 동시에 이뤄진다면 공동 감독체제가 있어야 할 텐데 이를 주장한 것"이라면서 "중국이 감독체제를 들고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미국 두 나라만 할 수도 있겠지만 중립적인 나라를 집어넣어 한국과 중국까지 4개국이 참여하는 공동 감독기구를 구성하자는 것 같다. 의장국이나 단장국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감독체제가 만들어지면 중국이 원했던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 교수는 북한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일부 경제제재의 해제를 조건으로 '영변지구를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의 공동 작업으로 폐기하자'고 제안했다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발언에 주목했다. 국제기구가 아니라 미국 전문가의 참관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어 "미국과 북한이 과연 감독체제 구성에 동의하는지는 별개 문제"라고 그는 말했다.
이번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후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커질지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왕 국무위원은 역할 확대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왕 국무위원은 이날 "우리는 이미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해) 20여년간 노력해왔다. 중국의 역할은 대체할 수 없다"면서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각 측과 함께 이미 정한 목표를 향해 계속 공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이어 2번째로 한국의 연합뉴스 기자를 지목해 질문을 받은 것은 한반도 문제에 큰 관심이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왕 국무위원이 "공동으로 만드는 포괄적 로드맵"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중국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로드맵 작성 과정에 참여를 원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하노이 북미회담을 전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할론을 내세워왔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지난 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건설적 역할을 계속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왕이 국무위원은 베이징에서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북미 양쪽이 모두 비핵화와 경제제재 완화 등을 위해 중국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고 본다.
지린대학의 북한 문제 전문가 왕성은 "중국의 영향력은 앞으로 확대될 것"이라면서 중국이 관련 다자회의에서 중재하거나 북한을 한반도 비핵화와 경제 개혁의 길로 강하게 떠밀 수 있다고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 전망했다.
하지만 문일현 교수는 "미국과 북한 모두 중국을 불신하기 때문에 중국이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중국이 역할을 하고 싶어도 수단이나 방법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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