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길을 묻다] 유학생 출신 김씨의 무너진 꿈

입력 2019-03-10 06:01
수정 2019-03-10 08:58
[한국경제 길을 묻다] 유학생 출신 김씨의 무너진 꿈

강사 꿈꿨으나 결국 건설현장 일용직 자리 전전

취준생 일단 일용직 밀려나면 정규직 '하늘의 별따기'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김모(57)씨도 한때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해 대학원까지 나왔고 연구소에서도 일했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받으러 외국으로 유학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후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내 학계에서 강사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 중구 을지로 지업사(종이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3년간 일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짐을 쌌다.

나이가 드니 이력서를 낼 수 있는 곳조차 줄어들었다.

생계는 갈수록 빠듯해졌다.

학위와 경력은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는 인력시장에 발을 들였다.

◇ 대학원 나오고도 IMF 휩쓸려 일용직으로

일용직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해가 채 뜨기도 전인 오전 6시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운이 좋으면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그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테리어 업체 사장한테 눈에 띄어 현장관리소장을 맡은 지 7∼8년이 됐다.

시멘트를 바르고 타일을 깔기 위해 인부들을 구해 현장에 배정하는 역할이다. 몸이 힘들긴 해도 봄부터 가을까지는 꾸준히 일거리를 구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도 겨울은 여전히 춥다.

9∼10개월 만에 인력 사무실에 나가다 보니 일거리를 잡기 힘들어서다.

평소 인력사무소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사람들에게 우선 일거리를 나눠주는 것이 인력시장의 불문율이다.

올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김씨는 "예전에는 일거리를 찾는다고 아는 인력사무소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면 제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전화가 걸려와서 골라서 갔는데 요즘에는 안 그런다"며 "1월 중순부터 거의 한 달 동안 일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불경기일수록 가게 철거 현장이 늘어나거든요? 예전에는 철거하러 나가면 일당이 15만원이었는데 요즘은 13만원을 줍니다. 업주들이 인력사무소를 경쟁시키니까요. 13만원이라도 먹고 살려면 인부들을 보내는 겁니다."

일용직 중에서도 나름 만족하며 사는 그와 달리 주변에선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때마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이 없다는 점"이라며 "건설현장에 나가거나 청소일을 하거나 몸을 갖고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기술 습득을 위한 학원비를 지원해주지만 야간학원은 많지 않아요. 학원에 다니면 돈도 벌지 못하고요. 하루에 평균 노임이 10만원이라고 볼 때 기술을 배우는 기간에 7만∼8만원이라도 정부에서 지원해주면 1년이 됐든 얼마가 됐든 용접, 타일 자격증을 따서 다시 사회에 진입할 수 있을 텐데 현실적으로 힘들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소수예요."

◇ 애타는 취준생들 "공부보다 힘든 건 불안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벽은 높다.

한번 임시·일용직으로 밀려나면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이는 청년들이 '괜찮은' 일자리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1년째 취직 준비 중인 민모(27)씨는 공기업 지망생이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드는 조바심은 어쩔 수가 없다.

작년 하반기 그는 공기업은 물론 사기업까지 합쳐 원서를 30곳 정도 썼다. 보통 40∼50곳을 쓰는 친구들보다 적은 편이라고 그는 말했다. 최종면접까지 간 곳도 있었지만 모두 고배였다.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 아닌데 연거푸 최종면접에서 탈락하니까 '멘탈'이 나갔어요. 제일 힘든 건 공부가 아니라 과연 내가 붙긴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에요. 요즘에도 면접을 보면 뭐하나, 붙을 수는 있을까, 취직 못 하면 나는 어쩌지 하고 생각을 해요."

홍모(29)씨는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지난해 12월 그만두고 1월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다.

처우가 나쁘진 않았지만 여성인 그가 출산·육아를 생각하자니 오래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홍씨가 전 직장에 취직할 수 있던 것도 이전 근무자가 출산휴가를 가면서 빈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출산·육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직업이 공무원 외에 뚜렷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주에서 살던 그는 혼자 노량진으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다.

오전 6시에 시작해 오후 11시 30분 잠들 때까지 일과 대부분을 학원과 독서실에서 보낸다.

첫 일주일은 고되고 외로웠다.

그러나 노량진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며 서로 의지하게 됐다.

홍씨는 "마음 같아서는 합격할 때까지 공부하고 싶은데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친구들도 자리 잡고 있으니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4월, 6월 시험이 있는데 이번에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내년까지 도전할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청년들이 도전 정신이 없이 공무원만 하려 한다는 비판이 의식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혼하든 하지 않든 나이가 어느 정도 들 때까지는 직업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스스로 부양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지금 하는 일이 그나마 맞는 길인 것 같다"며 "예전에는 그런 비판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porqu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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