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나도 여전한 기형도에 대한 그리움…'낭독의 밤' 개최

입력 2019-03-08 05:32
30년이 지나도 여전한 기형도에 대한 그리움…'낭독의 밤' 개최

변영주 감독, 심보선·이병률 시인 낭독…젊은 시인들 헌정시 읽어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단 한권의 시집만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난 기형도.

그를 추모하는 '기형도 30주기 낭독의 밤―어느 푸른 저녁' 행사가 7일 서울 홍대 다리소극장에서 마련됐다.

시인이 세상을 산 시간보다 더 많은 날이 지났지만, 이날 행사에는 100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에 가득 들어차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을 추억했다.

먼저 연세대 인문학연구원과 함께 이번 행사를 마련한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는 인사말에서 기형도 시인과의 짧은 추억을 소개했다.

이 대표는 "젊을 적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처음 연락해준 기자가 있었다"며 "그와의 인연은 1년 정도였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처음으로 문인으로 호명해준 그를 기억한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분이 남긴 기억을 많은 분이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첫 순서로 변영주 감독, 심보선 시인과 이병률 시인이 무대에 올라 기형도 시를 낭독했다.

'쥐불놀이 - 겨울 판화 5'를 낭독한 변 감독은 "기형도 시인의 시는 개인의 비루함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설렘으로 구성된 문장들로 이뤄졌다"며 "영화가 가는 길에 늘 깃발이 돼준 한국 문학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섰다"고 밝혔다.

심보선 시인은 '포도밭 묘지 2'를 읽은 후 "시집 전체에 집중하며 온전하게 빠져들어 읽었던 첫 경험이 기형도 시집을 읽으면서였다"고 돌이켰다.

그는 "내 시가 기형도 시인의 시와 유사하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나같이 근원 없는 종자도 시를 쓸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병률 시인은 기형도 시인의 대표 시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으며 그를 기렸다.

젊은 시인 강성은, 신용목, 정한아는 기형도 시인에게 바치는 헌정 시를 낭독했다.

강 시인은 기형도의 시 '조치원'에서 영감을 받은 '겨울에 갇힌 한 남자에 대하여'를 낭독했다.

그는 "내 시에서 카프카와 기형도를 보게 돼 살짝 두려운데 한편으로는 이분들을 내 시 안에서 새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게 상상의 시간과 공간을 부여해준 것 같아 고맙다"고 전했다.

신용목 시인은 '[어느 푸른 저녁]의 시인에게'라는 시를, 정한아 시인은 '야곱의 사다리'를 기형도 시인을 추모하며 읽었다.

신 시인은 "우리가 어디 있든, 무슨 일을 하든 각자 겪어야 할 절망과 청춘이 있는데 그걸 기형도 시인이 견디게 해준 것 같다"며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도 가끔 되돌아오는 청춘을 견뎌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것 역시도 그의 시가 도와준다"고 돌이켰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시인의 시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젊은 시인들의 이야기에 관객들은 웃고 박수 치며 각자 마음속의 기형도 시인을 떠올렸다.



'창작집단 독'은 독회극 '독-플레이 기형도'를 A, B극으로 나눠 공연했다.

이들은 기형도 시를 바탕으로 한 연극을 통해 기형도가 생전에 시로 말하려 한 일상의 부조리가 여전히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있으나 우리는 이를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려 했다.

끝으로 가수 권나무와 연주자 강희원이 기형도 시인을 위한 음악 공연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젊은 배우들과 음악인들이 기형도 시인에게 헌정한 무대를 때론 숨죽이며, 때로는 웃으며 감상했다.

한편 문학과지성사는 기형도 시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시들과 미발표 시 97편 전편을 모으고 '거리의 상상력'을 주제로 목차를 새롭게 구성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출간한다.

또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젊은 시인 88인이 쓴 88편의 시를 모은 트리뷰트 시집 '어느 푸른 저녁'과 독일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김유가 기형도 시 '전문가'를 모티프로 삼아 제작한 그림책 '전문가Ein Experte'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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