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상속 여자에게 찾아온 남자의 온기…'시냇가빌라'

입력 2019-03-06 11:39
힘겨운 일상속 여자에게 찾아온 남자의 온기…'시냇가빌라'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자 김의 작가 신작 장편소설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마음 둘 곳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다 서로와 마주하게 된 두 남녀.

주인공 솔희는 이혼 후 작은 도시의 한 빌라에서 고양이 티티, 강아지 말랭이와 살고 있다.

4년간의 결혼 생활은 수치와 모멸, 분노와 슬픔만을 남기고 끝났고, 솔희는 이제 시냇가빌라의 이웃들과 크고 작은 생활 속 전쟁을 치르고 산다.

위층에 사는 척추장애인 해아저씨만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 준다.

솔희는 해아저씨와 한가지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어느 폐가에 묻힌 시신의 핸드폰으로 그의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장편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나날'로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김의 작가가 신작 '시냇가빌라'(나무옆의자)로 돌아왔다.

'생생하고 처절한, 간만에 등장한 밑바닥 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전작에서처럼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도 소수자 혹은 소외 계층의 삶을 핍진하게 보여주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고발한다.

작가는 단지 비극을 짓는 데만 머무르지 않고 약한 존재들 간의 연민과 위로를 가슴 뭉클하게 그려낸다.

'사랑하다가 다친 그 허수아비에게 그리운 것들은 모두 봄으로 오길 소망한다.'('작가의 말' 중)

솔희의 삶은 궁색하다. 폐지를 줍는 여자로 오해받고, 월세가 밀려 집주인에게 일하는 식당에서 월급을 가불받기도 한다.

자기 것이 아닌 빌라 앞 토사물을 치우라며 역정 내는 아랫집 여자에게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고 이를 치운다.

하지만 솔희는 국숫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티티와 말랭이를 돌보고, 이웃들과 웃고 대화하며 일상을 잔잔하게 채워나간다.

해아저씨에게 붕어찜과 고들빼기를 가져다주는 등 그를 챙기는 소소한 일과들은 솔희 일상의 낙이다.

그리고 위험에 빠진 솔희를 구하기 위해 해아저씨가 손을 뻗은 어느 날, 솔희는 해아저씨와 한집에서 잠이 든다.

'주무세요? 나지막이 해아저씨를 불러보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솔희는 살며시 침대에서 나와 해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의 등 뒤에 가만히 누웠다. 그의 등을 바라보며 역시 새우처럼 누웠다.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왠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었다. (…) 그렇게 한동안 해를 어루만지다가 조심스레 얼굴을 갖다 댔다. 얼굴이 한없이 따뜻해졌다. 역시 따뜻한 해였다.'(63∼64쪽)

남편이 솔희에게 가하는 폭력은 우리가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익히 접한 남성 폭력의 전형이다.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듯, 비극은 선량한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솔희와 해아저씨 또한 그 지독한 운명의 당사자가 된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이, 그들이 찾아낸 최선의 윤리가 비극적이더라도 이 소설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 덕분에 봄의 온기를 띤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결말을 맺게 되어 미안하다. 물론 사회적 약자로서는 뛰어넘지 못할 장벽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작가로서 미안하다.'('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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