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단백질이 떠는 이유, '진동 지문'으로 읽는다
미 버펄로대 연구팀, 흡광 스펙트럼 측정법 개발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세포의 단백질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초미세 진동을 한다. 인간은 물론이고 새, 벌, 장미, 심지어 박테리아까지 살아 있는 어떤 생명체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해서 단백질은 자신의 모양을 재빨리 바꿔 다른 단백질과 결합한다. 손상된 세포의 복구나 식물의 광합성과 같은, 생명체 안에서 벌어지는 주요 생물학적 과정은 모두 단백질의 이 '떨림'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일반인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는 단백질의 진동이 학계에선 중요한 연구 테마로 꼽힌 지 오래다.
그런데 미국 버펄로대 물리학과의 안드레아 마르켈스 교수팀이 종류별로 고유한 단백질의 진동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연구결과를 담은 보고서는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실렸다.
4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로 꼽히는 마르켈스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은 수년 전 단백질의 미세 진동과 에너지, 운동 방향 등을 측정하기 위해 '비등방성 테라헤르츠 현미경관찰법(ATM; anisotropic terahertz microscopy)'을 개발했다.
이는 테라헤르츠급 빛을 단백질 분자에 조사한 뒤 분자가 흡수하는 빛의 주파수를 측정하는 것이다. 단백질 분자는 흡수하는 빛과 같은 주파수로 진동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단백질 분자의 운동을 관찰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기존 ATM 기술의 단점을 보완해 측정의 효율성을 대폭 높인 것이다. ATM으로 유용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려면 샘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현미경의 초점을 정확히 중앙에 맞춰야 하는데 이게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다.
새 기술은 번거롭게 샘플을 회전시키는 대신 샘플에 조사하는 빛의 편광면(진동면에 수직인 평면)을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했더니 측정 시간이 종전의 6분의 1로 단축되고 데이터 정밀도도 높아졌다고 연구팀은 말한다.
연구팀은 새 기술로 단백질 4종의 진동을 측정해 각 단백질을 구분할 만한 '진동 지문(vibrational fingerprint)'도 확보했다. 이 지문은 각 단백질 고유의 흡광(light absorption)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다.
측정 대상으론, 계란 흰자 리소자임(chicken egg-white lysozyme), 광활성 황색 단백질(photoactive yellow proteins), 디하이드로 엽산 환원효소(dihydrofolate reductase), RNA G-사중체(quadruplexes) 등 실험 목적에 부합하는 것들을 선별했다.
리소자임의 기능을 억제하고 진동 주파수를 바꾸는 화합물로 '계란 흰자 리소자임'을 묶은 상태에서 측정한 결과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의 측정 결과와 비교했는데 선명하게 다른 흡광 스펙트럼이 나타났다. 새 측정 기술의 유용성이 제대로 입증된 셈이다.
마르켈스 교수는 "단백질은 자연이 개발한 멋지고 힘센 나노머신"이라면서 "자연이 단백질 진동으로 이 기계를 최적화한 섭리를 이해하면 의학, 에너지 재활용, 전자공학 등에 접목되는 생명공학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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