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정상회담 합의 무산에도 美와 대화의지…강경 회귀 없을 듯
내부에 함구하며 회담 긍정 평가…김정은 지도력 훼손 우려한 듯
리용호·최선희, 회견 통해 美책임론 부각…일정 기간 냉각기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끝났지만,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신호를 발신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베트남 정상회담(2.27∼28) 무산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채 회담의 긍정적 의미만을 담담하게 보도했다.
전날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한 채 무산된 충격에도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식의 대미 비난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사의를 표하고 새로운 상봉에 약속했으며, 두 정상이 북미 관계의 획기적 발전에 대한 확신을 표명했다면서 이번 회담이 양국관계와 한반도 및 세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한 의미 있는 계기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북한이 제재 해제 등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지 못한 채 최고지도자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에도 과거의 '강경'노선으로 회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 천㎞를 사흘간 달려 베트남까지 온 김정은 위원장이 빈손으로 평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쪽으로 정책적 방향을 신속하게 결정하고 움직이는 모양새다.
북한 매체들이 회담이 무산된 지 하루도 안 된 이 날 오전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면서 긍정적 내용만을 전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빠른 정책적 선택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는 절대 권력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과 진행한 정상회담이 '실패'했다는 점을 내부에 공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례 없는 '사전 보도'까지 해가며 김 위원장의 베트남행을 '평화 번영의 대장정'으로 대대적으로 선전했는데 김 위원장의 빈손 귀환을 언급할 경우 최고지도자의 리더십을 훼손하고 치명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회담 무산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는 내용조차도 이번 회담의 실패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꼴이 되는 셈이어서 감출 수밖에 없다.
또 그동안 북중 정상회담의 경우 합의문이 없었던 만큼 북미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합의문이 나와야 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내부에는 정상회담의 무산과 실패 사실을 감추는 대신 국제사회를 향한 여론전을 통해 미국을 압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미 협상의 핵심 실무책임자인 리용호 외무성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1일 심야에 전격 기자회견을 열고 제재 해제 요구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회담 결렬 기자회견 발언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합의 무산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이들은 북측이 완전한 제재 해제가 아니라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대가로 부분적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상호 주고받기 차원에서 불합리한 요구가 아닌, 오히려 불가피하고 정당한 요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런 원칙적 입장에는 추후도 변함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대미 대화 의지를 보인 북한 매체의 정상회담 결과 보도에도, 당장 북한이 먼저 미국 측에 협상을 제안하며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한동안 냉각기가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특히 최 부상은 회담 기간 김 위원장을 곁에서 지켜본 결과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 좀 이해하기 힘들어하시지 않는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하는 듯한…앞으로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1일 하노이를 떠나 필리핀 마닐라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추후 북미회담 계획에 대해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며 "내 느낌으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미 양측 모두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충격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인 셈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고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충분한 상호 이해의 기회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화의 판이 깨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chs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