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언론 "스페인 北대사관 침입 괴한, 北 특수공작원일 가능성"
사건 처음 보도한 '엘 콘피덴시알' 美 북한 전문가들 인용해 추론
2017년 스페인서 추방된 김혁철 전 대사가 현재 北 대미특별대표인 점에 주목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직원들을 결박한 뒤 컴퓨터 등을 강탈해간 괴한들이 북한의 특수공작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주(駐)스페인 북한대사관은 북한의 미국과의 핵 협상 실무를 맡은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가 2017년 9월까지 대사로 재직하던 공관으로, 스페인 정부는 당시 북한의 핵실험 도발에 대한 항의로 김 대사를 추방했다.
사건을 처음 보도한 스페인의 온라인 신문 '엘 콘피덴시알'은 28일(현지시간) 후속 보도에서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을 인용해 전 북한대사 김혁철이 현재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라는 점에 주목, 북한이 보낸 비밀공작원들이 대사관에서 김혁철과 관련한 파일을 챙겨갔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신문에 따르면, 미 랜드(RAND) 연구소 브루스 베넷 선임 연구위원은 김혁철이 갑작스러운 스페인의 추방 결정에 자신 또는 북한 정권에 사활이 걸린 파일을 실수로 대사관에 두고 나왔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북한 수뇌부가 이런 민감한 내용을 북한대사관의 다른 외교관이나 직원들이 열람할 것을 우려해 공작원들을 급파해 수거해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넷 위원은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혁철의 충성심을 확인하고자 공작원을 보냈을 것이라는 가설도 제시했다.
자신이 대미 핵 협상 실무를 맡길 만큼 신임하는 김혁철의 충성심을 한 번 더 체크하기 위해 그가 스페인 대사관에 개인적으로 보관해온 파일들에 김 위원장이 흥미를 가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엘 콘피덴시알'은 스페인 대사를 지내고 그 전에 에티오피아·수단 등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혁철이 '자유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신상을 보다 확실히 챙겨보기 위해 북한 수뇌부가 비밀공작원들을 보냈을 수도 있다고 추론했다.
미국의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외교정책포커스'의 존 페퍼 편집장도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괴한들이 컴퓨터의 파일과 특정한 정보를 찾으려 한 점이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북한 외의 다른 국가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은 작다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북한대사관이 지난 22일 발생한 이 사건을 당초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처음에 사건 현장에 나간 경찰에 대사관 직원인 척 '아무 일도 없다'고 둘러댄 인물이 괴한 중 하나로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고 있었다는 경찰관 진술이 나오는 등 사건 배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대사관에 침입해 직원들을 묶어놓고 네 시간 넘게 대사관을 뒤져 컴퓨터 여러 대를 갖고 달아난 괴한들은 대사관 직원들이 사용하던 휴대전화까지 털어 간 것으로 전해졌다.
28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북한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북한 사업에 관여해온 '한국우호협회'의 알레한드로 카오 데 바노스 회장은 대사관 직원들로부터 괴한들이 컴퓨터와 휴대전화기까지 빼앗아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AP와 인터뷰에서 "확실한 건 이 일은 강도 사건이라는 것"이라며 다른 구체적인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스페인 경찰은 정보부서에 이 사건을 배당했다고 EFE 통신이 전했다.
경찰은 단순 강도일 가능성과 특정 정보를 노린 세력에 의한 소행일 가능성 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EFE 통신은 27일(현지시간) 사건에 대해 질의하자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측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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