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담판 결렬] 충격적 빈손회담, 톱다운외교 '리스크' 확인(종합)
북미, 합의문 도출 실패…"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속설 뒤집혀
최대쟁점 그대로 둔 채 '시한' 정한 톱다운 방식 한계 노출 지적도
1986년 미소 정상회담도 결렬됐다가 이듬해 회담서 중거리핵 폐기 협정
(하노이=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외교가에는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속설이 있다.
양국 최고지도자가 만나는 정상회담은 통상 충분한 실무협상 과정을 거쳐 사실상의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파국'을 맞는 상황은 극히 드물고, 설사 치열한 논쟁끝에 쟁점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성공'으로 포장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역사적 핵 담판'으로 기대를 모은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결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27~28일(이하 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것은 북미 핵 협상이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톱다운 방식은 실무진에서 협상해서 올린 것을 정상이 최종적으로 마침표를 찍고 서명하는 보통의 '바텀 업'(bottom up) 협상과 정반대로, 정상간에 큰 틀에서 합의를 한 뒤 실무진에 후속 협상을 넘기는 방식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일자는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정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 미 의회에서 한 국정연설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27~28일 베트남에서 개최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흘 뒤인 8일 트위터를 통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회담 개최지가 하노이라고 밝혔다.
정상끼리 회담을 하기로 합의를 해놓고 '비건-김혁철 라인'의 실무협상이 이뤄졌지만 결국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결과적으로 이기지 못했다.
27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교 만찬 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미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작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 북미관계 정상화 등에 관한 원론적인 차원의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를 모였다.
그러나 28일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에서 열린 확대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예정됐던 합의문 서명식도 취소됐다.
충분한 실무협상을 통해 이견을 조율하지 않고 정상회담을 통한 탑다운 방식으로 담판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우호국 간에는 세부사항까지 사실상 합의된 상태에서 최고 지도자가 만나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결렬되는 사례는 드물다.
북미는 70년 이상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최고지도자 간 담판으로 이견을 해소하려고 했지만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 등 핵심 쟁점에서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톱다운' 방식의 리스크가 그대로 확인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무진에 내려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조차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회담 일정을 잡고, 마지막 정상간 담판으로 최종 결판을 내려던 두 지도자의 시도는 실패로 귀결될 위기에 처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원인과 관련 "실무협상에서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추진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영변 폐기 플러스 알파'와 미국의 제재 해제를 놓고 양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양측이 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과거 정상회담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냉전해소를 논의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 만난 일을 꼽을 수 있다. 두 정상은 당시 아무런 합의문도 채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 워싱턴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IRNFT)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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