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선수촌 규정 어긴 국가대표…'태극마크 책임감'은 어디로
국가대표 소양교육한다지만…선수·지도자가 못 깨달으면 공염불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규정을 어겨 쫓겨난 선수가 또 나왔다.
대한체육회는 남자 선수 출입이 금지된 여자 선수 숙소동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종목 선수에게 들킨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건우(21·한국체대)에게 퇴촌을 지시했다.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뒤 체육회는 사후 조처로 선수촌 여자 대표 선수 숙소에 남자 선수와 지도자들의 출입을 더욱 엄격히 통제했다.
그런데도 체육회와 선수촌의 방침을 비웃듯 이런 사태가 또 벌어진 셈이다.
김건우는 지난 24일 쇼트트랙 대표팀 동료 김예진(20·한국체대)에게 감기약을 건네주려 했다고 해명했다.
김건우는 김예진에게서 출입 바코드 정보를 얻었기에 여자 숙소 출입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김건우와 김예진 모두 선수촌의 방침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체육회는 우선 김건우에게 퇴촌 3개월, 김예진에게 1개월 결정을 내렸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징계에 따라 퇴촌 기간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신치용 선수촌장은 "해당 종목 국가대표 에이스라고 해도 잘못했다면 규정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선수촌 직원들에게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엔 남자 기계체조 대표 이준호(24·전북도청)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선수촌 내 숙소에 여자 친구를 데려와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가 뒤늦게 발각돼 역시 선수촌 바깥으로 쫓겨났다.
당시 여자 친구는 일종의 '보안 구역'인 선수촌 숙소에서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재미 삼아 올렸고, 이를 접한 체육회가 이준호에게 즉각 퇴촌을 명령했다.
이준호는 대한체조협회의 대표 박탈 조처로 내년 도쿄올림픽에 못 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선수촌의 허술한 관리보다는 국가대표로서의 본분 망각에서 비롯됐다는 데 있다.
체육회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선수촌에 들어온 각 종목 국가대표를 상대로 국가대표 소양교육을 한다.
국가대표의 자부심과 태극마크를 단 공인의 책임감, 선수촌 규정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에게도 보다 엄격한 지도를 부탁한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가볍게 여기는 일부 선수들 탓에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폭력·성폭력과 같은 체육계 악습으로 엘리트 체육의 존재감이 바닥으로 처진 상황에서 잇달아 터진 불상사로 체육계는 또다시 궁지에 몰렸다.
선수촌의 한 관계자는 28일 "운동만 잘해서 선수촌에 들어오는 미성숙한 대표 선수들이 많은 실정"이라며 "지도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이 본분을 깨닫지 못한다면 소양교육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짬짜미, 파벌, 폭행·성폭행 등 온갖 병폐를 고스란히 노출해 한국 엘리트 체육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빙상 종목은 이번 사건으로 또 한 번 국민의 매서운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선수, 지도자, 연맹할 것 없이 큰 각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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