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 미국도 멈칫…한은 금리 인상 두 번 하고 끝나나
수출 둔화에 성장전망 힘 빠져… 미 연준 당분간 동결 시사
금리 아직 낮지만 인상 쉽지 않을 듯…이주열 "인하 검토 단계 아냐"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김수현 정수연 기자 = 한국은행의 이번 금리동결은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서며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실은 결과로 풀이된다.
금리 인상 동력이 약한 상황이어서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가 이렇게 막을 내린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한은은 28일 서울 중구 본관에서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의 연 1.75%에서 동결했다.
기준금리는 2017년 11월 1.25%에서 1.50%로 오른 뒤 1년 만인 2018년 11월 1.75%로 오른 후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동결됐다.
한은의 금리동결 결정은 시장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결과다.
금융투자협회가 13∼18일 104개 기관 채권 관련 종사자 2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0%가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답했다.
경기 우려가 커지며 금리 인상론이 작년 말 이후 급격히 힘을 잃는 모양새다.
수출은 작년 12월(-1.2%)과 지난달(-5.8%) 2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달 1∼20일 수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7% 줄어 3개월 연속 감소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 유가 하락 때문에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0.8%로 1년 만에 1% 미만으로 내려갔다.
전월과 비교한 전체 산업생산은 작년 11월∼12월 감소했다. 지난달 0.8% 반등하긴 했지만 기저효과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중 무역협상,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전개도 성장 경로에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나마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던 미국의 금리 인상은 늦춰지는 분위기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통화정책 변경에 대해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의 주요 근거이던 금융 불균형 우려도 다소 완화됐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금리 인상 필요성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이 금리 인상 기조를 접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한은으로선 금리 역전 폭 확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0.75%포인트인 한미 금리 역전 폭은 미국이 한 차례만 더 금리를 올려도 1.0%포인트로 커진다. 금리 역전 폭 확대는 당장 자금 유출로 이어지지 않지만 시장 불안이 커질 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금리가 아직 낮다는 지적도 있다.
한은은 2012년 6월부터 2016년 8월에 걸쳐 8차례 금리를 내렸다. 기준금리는 3.25%에서 역대 최저인 1.25%까지 떨어졌다. 경기 하강에 대응하고 각국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글로벌 통화전쟁 속에 한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면 인상은 2017년 11월과 지난해 11월 단 두 번에 그쳤다.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에서 벗어났으나 여전히 1%대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위기가 올 경우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 뇌관인 가계부채 증가율이 둔화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소득 증가율보다 빠르다는 점도 고려 요인이다. 더 부풀어 오르지 않도록 긴축 기조로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경제지표가 부진한 움직임을 보여서 금리 인하 의견이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만 경제 성장 경로는 1월 전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며 "금융안정 상황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기준금리는 여전히 완화적인 범위 내에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인하론에는 선을 그었다.
다음 금리 결정 회의인 4월 금통위에서 신호가 나올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흐름을 본다면 한은 기준금리는 계속 동결해야 할 것"이라며 "회복 신호를 보이는 지표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가계부채 급증, 자본 유출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저금리를 오래 유지하는 것은 안된다"면서도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기엔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에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고 국내 성장 경로에도 변수가 많아 한은의 관망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를 살핀 뒤 4월에 한은이 수정 경제전망을 하면서 금리 방향키를 설정할 가능성도 있다.
김 교수는 "연준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올해 한은 금리 전망이 달라질 것"이라며 "연준이 올해 2번 인상하면 우리나라는 1번 올릴 수 있지만 연준이 올리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인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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