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에 폭탄던진 강우규 의사 '3월 호국인물'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전쟁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1855.7~1920. 11) 의사를 '3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1855년 7월 평남 덕천군에서 가난한 농가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강 의사는 한학과 한의학을 공부해 한의사로 활동했다. 함남 일대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아 사립학교와 교회 등을 세워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경술국치에 분을 삯이지 못하고 이듬해 북간도로 이주해 독립운동에 여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이 시기에 박은식, 이동휘, 계봉우 등 많은 애국지사와 만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연해주 일대에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이 어렵게 되자 강 의사는 지린성 요하현으로 이주해 터를 잡고 '신흥동(新興洞)'이라 명명했다. 신흥동은 불과 1년여 만에 100여 호가 넘는 한인마을로 성장했고 만주 각지의 독립운동을 연결하는 거점이 됐다.
1919년 국내의 3·1독립만세시위에 호응해 만주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그해 5월 노인동맹단에 참가해 조선총독을 폭살시킬 계획을 품고 폭탄을 구입해 원산을 거쳐 8월 5일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안국동 김종호의 집에서 숙식하면서 신임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사진과 부임정보를 입수, 9월 2일 남대문 정거장에 나가 총독 일행이 마차를 타려는 순간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 등 37명이 죽거나 다쳤으나 총독 폭살에는 실패했다.
의거 16일 만인 9월 17일 체포되어 1920년 2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해 11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되기 전 아들 중건에게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며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정부 강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내달 7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유족 및 관련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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