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대통령, 외무장관 '전격 사의' 반려…"업무 복귀"
시리아 대통령 방문 '외무부 패싱'에 사의 표명 소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의 사의를 반려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27일 자리프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귀하는 미국의 광범위한 압박에 저항하는 선봉장이다. 사의를 수락하면 이란의 국익에 어긋나는 일로, 나는 사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리프 장관은 25일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외무장관으로서 부족함에 사과한다"며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했다.
자리프 장관은 27일 오전 테헤란에서 열린 로하니 대통령과 아르메니아 총리의 정상회담에 배석해 업무에 복귀했다.
로하니 정부의 유연한 대(對)서방 정책의 상징이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주역이기도 한 자리프 장관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밝히자 배경을 두고 소문과 해설이 분분했다.
그 가운데서도 그가 사의를 밝힌 당일 이뤄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이란 방문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시리아 내전에 직접 개입해 시리아 정부에 영향력이 큰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번 방문을 마련하면서 외무부에는 전혀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자리프 장관이 반발, '사표'라는 강수로 정부의 권위를 흔드는 군부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게 소문의 내용이다.
시리아 대통령이 내전 이후 처음으로 최대 후원국인 이란을 찾았고, 미군의 시리아 철수가 임박한 시점을 고려하면 이번 방문의 정치적 의미가 상당히 큰 데도 시리아 정부는 이를 '실무 방문'이라고 밝혔다.
외교 채널을 통하지 않은 방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리프 장관이 26일 "나의 사임으로 외무부가 외교 관계에서 제 몫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도 외무부를 무시하는 군부를 암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로하니 대통령도 27일 서한에서 "외무부는 외교 관계를 총괄하고 국가 안보와 국익을 결실 맺도록 하는 기초를 마련한다"며 "그래서 여러 차례 정부 부처에 외교 관계에서는 외무부와 반드시 완전히 조율하라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외무부를 건너뛰는 '외무부 패싱'을 지적한 셈이다.
이런 해석이 나오자 당사자로 지목된 혁명수비대의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은 27일 "시리아 대통령 방문 때 자리프 장관이 배석하지 못한 것은 사전에 대통령실과 조율되지 않은 실수 탓이지 일부러 그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자리프 장관이 이란의 외교 정책을 책임져야 한다"며 "그는 모든 고위 공직자와 특히 최고지도자의 지지와 인정을 받는다"고 말했다.
자리프 장관의 '돌연 사의'는 마무리되는 분위기지만 이번 일로 이란 내 중도·실용 정부와 강경 보수세력의 갈등이 상당히 첨예해졌음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일방적인 탈퇴로 핵합의가 위기에 처했고, 핵합의로 경제난을 해결하려는 로하니 정부의 외교·경제 정책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이란에서는 보수파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를 놓고 유럽과 금융거래를 위해 이를 가입해야 한다는 정부와 서방에 '금융 사찰'을 당한다면서 반대하는 보수파 간 갈등이 커졌다.
자리프 장관은 26일자 현지 신문 줌후리에 에슬라미와 인터뷰에서 반대파에 대해 원색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핵합의를 탈퇴한 쪽은 도널드 트럼프(미 대통령)인데 왜 국민이 뽑은 로하니 대통령을 비난하느냐"며 "그들(보수파)은 의회에서도 FATF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30번이나 했다"고 말했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