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보장구 장애인 10만명…그들이 차도로 내몰리는 이유는(종합)

입력 2019-02-27 19:30
전동보장구 장애인 10만명…그들이 차도로 내몰리는 이유는(종합)

이용자 10년 만에 5배 증가…노인 이용자까지 합치면 더 많아

법상 보행자라 인도 이용, 통행 여건은 엉망진창…사고 빈발

불법이든 합법이든 인도 위 시설물 수두룩…안전장치 법제화 필요

전동보장구가 고속도로 진입하는 사례도…안전교육 시스템도 시급



(전국종합=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전동휠체어 타고 집 밖 나갈 때마다 두렵습니다. 특히 밤에는 목숨을 건 외출일 때가 많죠."

이동 시 전동보장구에 의지해야 하는 어느 지체장애인의 하소연이다.

전동휠체어와 같은 전동보장구가 장애인과 노인의 대표적인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열악한 인도 환경 탓에 이용자가 차도로 내몰리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른다.

제대로 된 장애인 보행환경 조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전동보장구에 대한 안전교육이 없는 등 관련 제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7일 통계청 '주요 장애인 보조기구 필요 및 소지 현황'을 보면 전동보장구(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 소지자는 2017년 기준 10만2천명으로 집계됐다.

2005년부터 전동보장구 구입 시 국민건강보험 급여비 혜택이 적용되면서 이용자가 10년 만에 5배가량 늘었다.

장애인 외에도 고령의 노인들이 전동보장구를 이동수단으로 쓰는 경우도 많아 실제 소유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전동보장구를 타기에는 우리나라 인도 여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전동보장구는 도로교통법상 자동차가 아닌 '보행자'여서 인도로만 다녀야 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도 유효 폭은 2m 이상이다.

지형상 불가능하거나 기존 인도를 증축 개축이 불가능할 경우 1.2m 이상으로 유지하면 된다.

가로수나 전신주, 간판을 설치할 때도 교통약자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게 보행 안전지대 밖에 설치하도록 하도록 법은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법이 지키지 않는다.

가로수나 도로 시설물이 인도 한복판에 불쑥 설치돼 통행을 막는 경우가 다반사다.



불법 시설물이나 조경을 위한 화단, 버스정류장도 무분별하게 놓여 있다.

보도블록으로 된 인도 침하나 벌어짐 현상이 자주 발생해 장애인들이 인도에서 전동보장구를 탈 때는 안전사고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UD환경팀장은 "전동보장구 이용자들은 일반 이용자들보다 자체 무게와 속도 때문에 사고 발생 시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차도 중심으로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 전동보장구 이용자들이 인도를 오르락내리락 힘이 든다. 이용자들이 단차(높낮이)가 없는 차도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 탓에 사고도 잇따른다.

지난 26일 0시 10분께 부산 영도구에서는 장애인 아들이 엄마를 무릎에 앉혀 함께 전동스쿠터를 타고 차도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택시에 부딪혀 어머니가 숨지고 아들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는 인도가 있었지만, 인도 환경이 열악해 장애인 모자가 도로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12월에는 전남 곡성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1차선 도로를 달리던 70대 장애인이 1t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지난해 8월 충북 청주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차도를 달리던 70대 노인이 택시와 충돌했다.

전동스쿠터를 이용하는 고령 노인이나 일부 장애인의 경우 안전의식이 떨어지는 것도 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전동스쿠터를 몰기 위해서 별도 면허나 안전교육 이수는 필요 없는 상태다.

일부 노인의 경우 전동스쿠터를 인도에서 몰아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경부고속도로에서 전동휠체어를 몰며 도로를 역주행하던 90대 여성이 경찰에 구조됐고, 2017년 10월에도 70대 남성이 전동스쿠터를 타고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하기도 했다.

도로교통공단 한 관계자는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 이용자를 위한 교통안전 교육과 안전장치 설치 법제화 등도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면서 "안전운전 상식, 전동보장구 점검법 등 필수 소양은 운전자가 익히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경찰청 교통과 이동관 경장은 "심야 전동휠체어 안전 운행을 위해 휠체어 앞뒤로 고휘도 반사지를 부착하거나 이용자가 야광 조끼 등을 입는 것이 도움 된다"면서 "부산경찰청은 모자 비극 사고를 계기로 교통 약자에게 반사지 등 안전장비를 무료로 나눠주고 실효성 있는 교통안전 교육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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