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이재인 "그것의 울음소리 직접 녹음했죠"
"요즘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16년 전 태어난 쌍둥이 자매. 동생은 언니 때문에 몸과 마음에 상처가 남은 채 살아간다. 온몸에 털이 난 흉측한 괴물 모습으로 태어난 쌍둥이 언니는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여겨져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는다.
신예 배우 이재인(15)은 영화 '사바하'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동생 금화와 이름조차 없는 언니 '그것', 두 역할을 오롯이 표현해냈다.
26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금화와 '그것'의 1인 2역이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금화를 연기할 때는 금화만, '그것'을 연기할 때는 '그것'만 생각했어요. 원래 '그것'은 다른 배우가 할 예정이었는데, 제가 하면 금화 연기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욕심이 났어요."
이제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그는 초등학교 시절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았다고 한다. 중학생 배우로서는 쉽지 않았을 삭발까지 감행했다. 이재인은 "'그것'은 백지상태인 모습으로 표현돼야 했다"고 삭발 배경을 설명했다.
"삭발 때문에 중학교 2학년 여름에는 계속 가발을 쓰고 다녔어요. 더웠죠. 가발 쓰고 축구시합을 하다가 쓰러질 뻔한 적도 있거든요. (웃음) 영화에서 털이 빠지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미는 것은 사실 당연하죠. 배우 활동을 하면 언젠가 한 번은 삭발을 하는 역할을 할 것만 같았어요.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리 온 것뿐이죠. 사실 머리가 없어서 세수할 때는 편했어요. 눈썹도 밀었는데 이게 더 충격이었어요."
영화의 어두움과 음산함을 한껏 끌어올리는 '그것'의 울음소리도 모두 이재인의 목소리다.
"유튜브에서 괴물 소리, 동물이나 아기 울음소리, 귀신 소리를 다 찾아봤어요. '그것'이 서러워서 오열하는 느낌이 들도록 했고요. '그것'의 동작을 익히면서 음성 연습도 같이했죠. 집에서는 할 수 없어서 주로 차에서 연습했어요."
금화를 표현할 때는 언니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에 집중했다.
"금화의 언니에 대한 마음에는 증오도 있지만 미안함, 혈육 간의 사랑이라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언니가 싫지만 좋은 거죠. 겉으로는 세 보이고 나빠 보이면서도 슬픔과 공허함이 담겨있는 금화의 눈빛을 연기하기 위해 감독님이랑 상의도 많이 했어요. 눈빛으로 연기하는 법을 많이 배웠죠."
그는 "세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다. 친한데 가끔은 밉기도 하다"며 "그래서 더 공감됐다"고 웃었다.
이재인은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도 공감했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아서 메모지에 전부 써서 질문하면서 공부했죠. 사실 아직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없진 않아요. (웃음) 누구나 생각했을 '신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고민할 기회가 됐습니다."
그는 "'사바하'의 인기가 얼떨떨하고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책임감이 생긴다"며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요즘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함께 연기한 이정재와 박정민 등 선배 배우들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두 분의 팬이었어요. 박정민 선배는 촬영에 들어가면 나한의 모습인 게 보여서 연기할 때 저도 함께 몰입됐어요. 눈물 연기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기도 했고요. 이정재 선배는 같이 연기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함께 무대인사 다니면서 뵈었는데 어리숙한 저를 잘 챙겨주십니다."
2012년 드라마 '노란복수초'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이재인은 '아이 캔 스피크'(2017), '어른도감'(2017)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극 속 캐릭터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재밌어서 계속 다른 인물들을 만나보고 새로운 역할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어둡고 슬픈 역할을 많이 했는데 밝은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 연기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평생 하겠다는 뜻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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