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D-1] 김정은 3천800㎞ '열차 대장정'…존재감 각인 '효과'

입력 2019-02-26 16:21
수정 2019-02-26 18:40
[북미회담 D-1] 김정은 3천800㎞ '열차 대장정'…존재감 각인 '효과'

중국 내륙만 60시간 동안 3천500㎞ 종단…전체여정 66시간 육박

곳곳 통제에 중국인들 불편 겪었지만 세계 이목 끄는 데는 성공



(베이징·단둥·창사·광저우·톈진=연합뉴스) 심재훈 차대운 김윤구 김진방 차병섭 특파원 = 중국 남부 광둥성의 작은 마라탕 가게 업주로부터 춘제(중국의 설) 때는 고향인 동북 지방까지 꼬박 48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젊은 최고 지도자가 전용 항공기도 마다하고 선택한 열차 여정은 이보다도 훨씬 길었다.

지난 23일 오후 평양을 출발한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을 향해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데 걸린 시간만도 무려 60시간에 육박했다.

김정은, 전용열차로 베트남 동당역 도착…환영인파에 웃으며 손인사 / 연합뉴스 (Yonhapnews)

북한 구간까지 모두 합치면 26일 오전 베트남에 도착할 때까지 66시간으로 이틀반을 훌쩍 넘어 사흘에 가깝다. 김 위원장은 전용열차 객실에서 세 번의 밤을 보냈다.

전용열차의 이동거리는 중국 내에서만 약 3천500여㎞이며, 북한 내 이동거리 등을 합한 전체 여정은 3천800㎞ 안팎에 달한다.

애초에는 총 이동 거리가 4천500㎞ 가까이 될 것이라는 추측 보도가 많았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지난 23일 열차가 평양에서 출발했다면서 평양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총 4천500㎞에 달한다고 타전한 바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26일 오전 베트남 국경을 넘자마자 하노이까지 170㎞ 구간은 열차가 아닌 승용차로 이동했다.

게다가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를 들를 수 있다는 예상과는 달리 후난(湖南)성을 지난 뒤 남쪽이 아닌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거리를 400㎞가량 단축했다.

이에 따라 중국 지도 앱 가오더디투로 주요 구간별로 찾아보면 전용열차가 중국 내에서 이동한 거리는 3천500여㎞로 추산된다.

여기에 북한 평양~중국 단둥 구간 200여㎞, 중국 핑샹~베트남 동당 구간은 20여㎞를 더하면 총 이동거리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전용기 '참매 1호'를 타고 갈 것이라는 대부분의 전망을 보기 좋게 깨고 전용열차에 몸을 실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자취를 따라 정통성을 과시하고 북미 회담에 앞서 중국이라는 뒷배를 강조하며, 중국의 중·남부 주요 도시들을 돌아보며 개혁개방의 의지를 보여주는 다중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무리수'로 여겨졌던 열차 대장정을 강행하면서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톡톡히 과시하는 효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 언론이 그의 동선을 실시간 중계하다시피 하며 큰 관심을 쏟았다.

연합뉴스가 추적 취재한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23일 오후 4시 30분께 평양에서 출발해 6시간 뒤(현지시간 오후 9시 30분께) 신의주 건너편의 중국 단둥(丹東)역에 잠시 정차했다가 중국 내륙 종단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기관차 2량 등 모두 22량으로 구성됐다. 전용열차가 지나기 30분 정도 전에 별도의 선도 열차가 지나갔다.

이튿날 오전 베이징에 들러 중국 지도부를 만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베이징까지 가지 않고 24일 오후 1시(이하 현지시간)께 톈진(天津)을 지나갔다.

이후 열차는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을 지나 스자좡(石家莊)을 통과했다.

스자좡을 시작으로 허베이(河北)와 허난(河南),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등 4개 성의 성도를 모두 거쳐 가면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갔다.

24일 자정께에는 교통의 요충지로 소림사가 있는 허난성 정저우(鄭州)를 통과해 25일 오전 7시에는 후베이성 우한을 지나갔다.

우한은 김 위원장의 아버지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6년에 방문했던 도시 가운데 하나다. 또 할아버지 고 김일성 주석이 1958년 내각총리 자격으로 베트남을 공식 방문한 후 귀국할 때 거쳐 갔던 곳이기도 하다.

특별열차는 25일 오후 1시 10분에는 후난성 창사(長沙)역에 도착했다가 30여분간 정차한 뒤 다시 출발한 것이 연합뉴스에 포착됐다.

열차는 중간 정비를 위해 잠시 머물렀던 것 같다는 추측이 나왔다.

후난성 성도인 창사는 마오쩌둥이 1911∼1925년 청년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시속 60㎞ 안팎으로 느리게 가는 특별열차 때문에 도시마다 기차 운행 지연 사태가 속출했고 철로를 따라 인근 도로의 통행이 수십 분씩 차단됐다.



중국 소셜 미디어 웨이보에는 불편을 호소하는 이용자들의 글이 무더기로 올라왔으나 즉각 삭제됐다.

특별열차는 허베이성 바오딩에서부터 징광선(베이징-광저우)을 그대로 따라갔지만, 후난성 창사를 지나 헝양(衡陽)에 이르렀을 때는 광저우를 들러가는 대신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발원지인 광둥성에 있는 광저우를 들러갈 수 있다는 일부 예상이 빗나간 순간이었다.

헝양에서 광저우를 거쳐 난닝까지 가면 약 1천100㎞ 거리지만 헝양-난닝 최단 코스는 700㎞ 정도로 차이가 크다.

열차는 이후 광시좡족자치구로 접어들어 유명 관광지 구이린(桂林)을 지나 류저우(柳州), 난닝(南寧)을 거쳤다.

베트남에 가기 전 중국의 가장 마지막 역이 있는 핑샹(憑祥)에 26일 오전 7시 15분에 도착한 것이 연합뉴스에 포착됐다.

이후 김 위원장이 베트남 최북단 역인 동당역에서 오전 9시 25분(한국시각 10시10분) 하차해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차 여행은 약 66시간만에 끝났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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