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3·1 독립선언서 쉽게 풀어쓴 방송인 정재환
개그맨에서 우리말 지킴이·사학자로 변신…"정체불명 일본식 표현 유통 심각"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
3·1 독립선언서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어휘와 문장이 낯설어 현대인들이 그 감흥을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3·1 독립선언서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이를 현대 한국어로 쉽게 풀어쓴 결과물이 최근 나왔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방송인 겸 사학자로 활동 중인 한글문화연대 정재환(58) 대표의 작품이다.
이 독립선언서는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나들길에서 개막한 반크와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공동주최의 '2019 국가브랜드업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 대표는 지난 22일 마포구 한글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문서를 내가 쉽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면서 "처음에는 겁이 나 하지 말까 생각했지만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결국 이 작업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1979년 김동길 박사님이 현대 한국어로 3·1 독립선언서를 풀어 놓으신 자료가 있어 원문과 김 박사님의 결과물을 대조하며 작업을 시작했다"며 "완성하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문안이 지닌 고유의 역사성과 시대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문구를 선택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쉽게 풀어쓴 3·1 독립선언서에는 정 대표의 이러한 고민이 곳곳에 묻어난다. 3·1 독립선언서 공약삼장 두 번째 문장이 대표적이다.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를 김 박사님이 해놓으신 대로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순간에 다다를 때까지'로 풀어썼다가 다시 원문을 그대로 넣었다"며 "원안이 갖는 의미와 느낌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과거 TV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정 대표를 아직도 '개그맨'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03년 만학도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을 정도로 지치지 않는 열정을 소유한 학자로 변신한 지 오래다.
2000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2007년, 2013년 각각 같은 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냈다.
그는 "살면서 일, 한글, 역사 세 가지에 관심이 많았다"며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메뚜기도 한철인데 무슨 공부냐'고 다들 말렸지만,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다"고 웃었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한글학회 활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 대표는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꾸준히 전개 중이며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학교 교실 교장도 맡고 있다.
대학교 출강은 물론 각종 강연을 통해 우리말의 우수성과 공부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나는 오십에 영어를 시작했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정 대표는 "한글문화연대와 함께 정부 중앙 부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공공언어 쉽게 쓰기' 운동을 전개 중"이라며 "한국어 학교 교실은 3년 넘게 운영 중인데 이주 여성들의 독해 능력을 키워드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아직도 우리 문화에 깊숙이 파고든 일본식 표현을 퇴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타쿠', '가라오케'와 같은 단어는 일종의 외래어라 대체어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이빠이', '가오' 등은 대체 가능한 단어가 있음에도 계속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최근에 연예계, 영화계를 중심으로 '입봉'이라는 단어 사용도 늘고 있는데 입봉은 게이샤가 수련을 끝낸 뒤 처음 사람들에게 데뷔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라며 "새로운 단어의 어원도 생각하지 않은 채 너무 무책임하게 정체불명의 일제 잔재어가 대량으로 유통되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글 역사에 대해 계속 공부할 계획이라는 정 대표는 연구 성과물을 평생 타인과 나누며 살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이가 드니 이제 65세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동네 할아버지 교사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공부방을 열어도 되고 지역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에서 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국사도 가르치고 한글도 가르치고요. 영어나 일본어, 일본사 강의도 가능할 것 같네요. 사실 가르침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죠"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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