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재조명한 한일 공동 연구 논문집 나왔다
이태진·사사가와 교수가 엮은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3·1운동 연구 성과 일본에 전하면 인식차 줄어들 것"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각종 연구서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학자 10명이 5년간 진행한 공동 연구 성과를 담은 의미 있는 논문집이 출간됐다.
지식산업사는 22일 오후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간담회를 열어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사사가와 노리카쓰(笹川紀勝)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명예교수가 함께 엮은 학술서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1969년 동아일보가 '삼일운동 50주년 기념논집'을 낸 뒤로 한국과 일본 학자가 3·1운동에 관한 공동 연구서를 낸 적은 거의 없었다"고 발간 의의를 설명한 뒤 "2014년 이후 서울, 다롄, 요코하마, 하얼빈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글을 바탕으로 논문 15편을 실었다"고 말했다.
공동 편자인 이 교수와 사사가와 교수는 2001년에도 '한국병합에 관한 역사적, 국제법적 재조명' 학술회의팀을 꾸려 10차례 학술회의를 진행한 끝에 2008∼2009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한국병합과 현대'라는 책을 펴냈다.
학문으로 의기투합한 두 학자는 이태진 교수가 몸담은 한국역사연구원이 석오문화재단 지원을 받자 후속 프로젝트로 3·1운동 연구를 기획했다.
한국에서는 이 교수를 비롯해 김태웅 서울대 교수, 변영호 쓰루분카대 교수, 김승일 동아시아미래연구원장, 김봉진 기타큐슈시립대 교수, 김대호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 참여했다.
일본 측에서는 사사가와 교수와 2017년 작고한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세리카와 데쓰요(芹川哲世) 니쇼가쿠샤대 명예교수, 도리우미 유타카(鳥海豊) 선문대 강사가 필진에 이름을 올렸다.
이 교수는 총론 첫 번째 글에서 '민국'의 정치 이념과 용어의 행방을 추적해 3·1운동이 '국민운동'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또 1919년 경성지방법원 판결문을 분석해 3월 1일 탑골공원 팔각정에 올라 선언서를 낭독한 인물은 경성의전 학생인 한위건이 확실시되며, 3월 1일뿐만 아니라 3월 5일에도 시위가 계획됐음을 알려주는 논문도 수록했다.
사사가와 교수는 논문에서 국가보훈처가 공개한 판결문을 토대로 3·1운동이 비폭력적이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3·1운동을 계기로 일반 민중이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일본에서는 3·1운동이 비폭력 사건이었다는 견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면서도 "판결문에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춤을 추면서 3·1운동에 참여했다는 내용을 보면 비폭력성이 인정된다"고 역설했다.
근대문학 연구자인 세리카와 교수는 일본 지식인들이 3·1운동에 대응한 양상을 탐구했다. 그는 민본주의 논객과 사회주의자들이 침묵했지만, 실태를 고발하고 안타까워한 양심적 지식인이 존재했고 3·1운동을 다룬 문학작품이 일본에서도 상당수 발표됐다고 밝혔다.
관립전문학교 학생과 보통학교 학생의 만세시위 양상과 내면세계를 다룬 논문을 쓴 김태웅 교수는 "엘리트인 관립학교 학생들이 3·1운동에 참여한 이유는 민족을 넘어 보편적 정의와 인도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사사가와 교수와 세리카와 교수는 일본이 식민지배를 반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사가와 교수는 최근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우려하면서 "아베 정권과 지지 세력은 식민지배를 청산하지 않고 정당성만 주장한다"며 "3·1운동만 정확히 연구한다면 일본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는 이유를 극복할 해결책이 충분히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일본에서는 3·1운동이 특정 계층이나 집단 중심이 아니라 한국 민중 전체가 일어났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리카와 교수는 "일본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을 끼쳤다"면서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식민지배에 직접적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고의로 무시하고 왜곡하고 말소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한국도 일본이 반성할 수 있도록 도왔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3·1운동의 보편성과 진실을 일본에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시도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자성했다.
이 교수는 내년 이후에도 3·1운동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해외에서 벌어진 주권회복 운동 성과를 발굴해 활용해야 한다"며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한국이 참가하지 못한 이유가 영국 때문이었는데, 이와 관련된 역사적 실체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게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史實)이 밝혀져야 경색된 한일관계도 풀리지 않을까요."(이태진 교수)
책은 592쪽 분량이며, 가격은 3만3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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